1969년 컬러 91분
감독 심우섭 출연 김희갑, 구봉서, 송해, 도금봉
EBS 5월23일(일) 밤 11시10분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 코미디영화 감독인 심우섭의 <내 팔자가 상팔자>는 그의 ‘남자시리즈’(<남자식모> <남자기생> <남자미용사>)나 ‘팔도시리즈’(<팔도 노랭이> <팔도 며느리>)처럼 대표작은 아니지만, 1960년대 말을 풍미하며 서민들의 울분과 애환을 달래준 코미디영화 가운데 한편이다. 1969년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220편이 넘을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당시 한국 영화계에 코미디영화는 멜로, 액션영화와 함께 한몫을 담당한 장르였는데, 1969년과 1970년에만 매해 20편가량의 코미디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코미디영화가 이렇게 많이 만들어진 이유는 우선 막강한 자금력을 가졌던 지방흥행업자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코미디 장르로 많이 몰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군사독재 정권의 사회억압 기제가 좀더 강화되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즉, 엄혹했던 검열의 가위를 피하면서 영화를 만들기엔 코미디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도 원래 제목은 <남편을 바꿔봅시다>였던 것이 검열에 걸려 <달콤하고 상냥하게>로 바뀌었지만, 검열이 통과되지 않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내 팔자가 상팔자>로 겨우 검열을 통과했다고 한다.
이렇게 1960년대 말 한국영화는 양적으로는 엄청난 성과를 냈다. 하지만 코미디영화가 많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회·역사적 상황과 그 상황을 질적 전이의 과정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영화계 내부의 무력함은 양적 팽창과는 반대로 한국영화의 쇠락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1천만 관객 시대의 한국영화도 멀지 않은 과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승훈/ EBS PD agonglee@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