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a-bi 1997년
감독·출연 기타노 다케시
EBS 5월22일(토) 밤 11시
기타노 다케시 영화, 특히 형사나 야쿠자가 나오는 영화엔 공통점이 있다. 마지못해서 그저 살아가는 남자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권총이나 칼을 무기로 삼고, 살인과 폭력을 밥먹듯 저지르는 사람들이지만 묘하게도 그들에겐 삶의 이유가 제로에 가깝다. 아무런 희망도 없다. 그래서 더 폭력적인 행동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소나티네>와 <하나비>는 그중에서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어떤 모범답안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삶에 대한 긍정을 얻지 못한 남자들은 어느덧 서서히 죽음의 세계에 가깝게 접근한다. 다시 말해서 죽음을 택하는 남자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비>는 기타노 다케시가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영화. 니시와 호리베는 형사 콤비이자 친한 친구 사이. 니시는 아내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처지다. 그가 잠복근무 중 집안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호리베가 불의의 습격을 받는다. 이로 인해 불구가 된 호리베는 아내에게 버림받는다. 한편, 니시를 따르던 후배 경찰도 눈앞에서 같은 범인의 총을 맞고 비명횡사한다. 분노한 니시는 마지막 총알까지 다 퍼부으면서 범인을 죽이고 경찰직을 그만둔다. 그림이 삶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린 친구 호리베에게 니시는 그림 재료들을 보내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하나비>에서 빈 공간은 내가 영화를 찍는 방법의 원칙 중 하나다. 그것은 무의식적 작업의 결과다. 현대 이전까지 일본엔 죽음 안에서 낭만주의와 서정성을 찾으려는 의식이 지배적이었다. 나와 같은 일본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사랑과 죽음을 결부시킨다.” 영화에서 ‘하나비’라는 제목은 우리말로 불꽃놀이를 뜻한다. 영화에선 기타노 이전 영화들이 그랬듯 ‘다케시 블루’라는 시각 스타일이 눈에 띈다. 영화 배경으로 등장하곤 하는 푸른빛 바다의 이미지는 불구의 몸이 된 호리베가 절망하고 또한 다시 재기하는 장소가 되며 니시 부부가 여행 끝에 이르는 장소가 된다. 이 빛깔은 기타노 영화의 공허하면서 한없이 투명한 미학 세계와 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하나비>에서 감독은 직접 그린 그림을 화면에 사용한다. 펜으로 그린 그림은 호리베와 니시의 끊을 수 없는 유대감, 그리고 죽음의 이미지를 상징함으로써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가 된다. 삶과 죽음의 공존에 관한 일본 생사관(生死觀)의 주제를 전달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호리베는 꽃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의 세계로 빠져들고, 니시는 아내와 함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난다. 바닷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니시는 아내로부터 “고마워요, 미안해요”라는 말을 듣는다. 이것은 둘의 마지막 대화가 될까? 혹은 관객이 짐작할 수 없는 다른 숨겨진 결말이 있을까? 확실한 것은 아마도 <하나비>의 주인공은 다른 기타노의 폭력영화가 그랬듯 결국, 삶이라는 굴레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길 언젠가 행동으로 옮겼으리라는 것이다. 권총이 되었든, 칼이 되었든. 혹은 다른 길이라도.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