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은하 ‘아줌마’의 남편 유상건입니다.
제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여 인사하고 보니 이게 바로 유명인의 가족들이 겪는 비애가 아닐까 싶네요.
사실 저는 혹시라도 의뢰가 올까 해서 ‘내 인생의 영화’란에 쓰기 위해 대략 1년 전쯤 원고를 완성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원고청탁은 없고 어찌어찌하다 노트북이 러브바이러스에 걸리면서 파일을 몽땅 날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줌마’가 칼럼을 쓰기 전이었던데다가, 영화인들은 스포츠영화라면 몰라도 스포츠기자에 대해서는 통 관심이 없어서 <씨네21>의 어느 누구도 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화 <친구>가 <대부>보다 낫다’는 저의 과감한 평과 ‘쪽팔리서’를 키워드로 집어낸 탁월한 안목이 ‘아줌마vs아줌마’에 실리면서 추측건대 김혜리와 백은하 기자의 간택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영화를 몇편 추려보았습니다.
90년대 초 단성사에서 <지존무상>을, 그리고 피카디리에서 <개같은 내인생>을 연달아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황홀한 날이 있을 수 있나 생각하기도 했고 대여섯살 때쯤 본 <레드선>은 왠지 모르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중학생 시절에 본 <소림 36방>은 빡빡머리라는 정서적 동질감을 제외하더라도 매우 감동스러웠고 이소룡의 <사망유희>를 보고 나오면서 고인의 평안을 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인격체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내 인생의 영화’라면 <록키>를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의 종마’라는 다소 수치스러운 별명을 가진 록키 발보아가 고군분투하는 그 영화 말입니다. 별명 자체가 ‘천박한 곳 출신의 몸뚱이 하나뿐인 놈’임을 너무도 적절히 표현하더군요. 사실 저는 이 영화를 왕십리의 한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에 알았습니다만 연령제한에 걸려 직접 보지는 못하고 영화평이나 이런저런 잡지에 소개된 것을 보며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상상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으면 영화의 본 재미가 끼어들 여지가 적습니다. 그래선지 처음엔 별 재미가 없더군요. 그저그런 양아치 얘기가 나오고 덜컥 재수좋게 아폴로라는, 종마와는 너무도 대비되는 챔피언과의 시합이 잡힙니다. 지금도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록키가 대전일정이 잡힌 뒤 새벽 4시쯤 기상하는 대목입니다. 뚫어진 ‘난닝구’를 입고 1000cc는 족히 되보이는 유리컵에 계란을 여섯갠가 깨넣고 마시던 장면 말입니다. ‘야, 미국사람은 가난해도 계란을 많이 먹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계란은 저렇게 먹는 것보다는 부쳐먹는 것이 좋은데’ 하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럭저럭 진행되던 영화가 정육점에서의 연습장면을 거쳐 록키가 수백개의 계단을 지나 두손을 번쩍 쳐들고 ‘gonna fly now’가 쏟아져 나오면서부터 콧등이 시큰해졌습니다. 이후에는 아폴로와의 격전이 화면을 가득 채웠고 마치 내가 얻어맞는 것처럼 록키보다 더한 충격에 휩싸이며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는 피날레.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록키가 외칩니다. “애드리안! 애드리안!” 방송카메라도 마이크도 보이지 않는 듯 필사적으로 애인의 이름을 부릅니다.
‘햐 저거구나,저것이 진짜 사나이구나.’
사나이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기죽지 않는구나. 아무리 맞아도 포기하지 않는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나서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다 필요없다.나에겐 오직 그녀뿐이다’라고 당당히 외치는구나.
어려서 본 만화 <도전자 하리케인>과 함께 그날의 흥분은 내 몸 구석구석에 남았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흉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리 두들겨 맞더라도 지지 않는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장렬한 승부를 펼친다. 뭐 이런 식의 생활철학이 몸에 뱄는데….
그런데, 그런데 이게 함정이었습니다. 항상 어려울 때까지, 최악의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체질이 돼버린 것입니다. 그래야 록키처럼 멋진 승부를 펼칠 테니까요.
아내는 제가 게으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저는 다만 때를 기다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근데 아폴로는 왜 아직도 날 안 부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