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열정’이 아니라 ‘수난’이라는 뜻이다. 어린 시절의 다락방이 기억난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영어성경이 있었는데, 동판 혹은 펜화로 그려진 삽화가 딸려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나를 사로잡은 것은 예수 수난의 장면이었다. 17세기 바로크 사람들은 성당 벽에 걸린 잔혹한 순교의 그림을 걸어놓고, 거기서 은밀한 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처럼 ‘수난’이라는 장르는- 예수 수난이든 마태 수난이든- 표면의 종교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의 바탕에 흐르는 더러운 카인의 피를 증언한다.
예수는 자신을 ‘인자’(人子)라 불렀다. 중세에 그려진 <십자가 책형>은 그리 잔혹하지 않다. 예수가 죽음을 죽인 찬란한 승리자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은 ‘신의 아들’로 상승한다. 하지만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의 작품은 사뭇 다르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 이하로 내려간다. 채찍과 가시 면류관에 찢긴 예수의 몸은 인간 이하, 학대받는 동물의 신체로 묘사된다. 멜 깁슨의 영화는 이 ‘페스트 십자가 책형’의 도상적 전통을 잇고 있는 셈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는 현대판 이젠하임제단화(1511∼15)이다. 퍼렇게 질린 입술, 손과 발에 흐르는 끈적끈적한 선지피, 가시에 찔려 해진 걸레가 된 몸. 이 작품의 확대된 사진을 보고, 그 가공할 회화의 폭력에 전율했던 기억이 난다. 온갖 잔혹한 이미지에 익숙한 내게도 이 작품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하물며 16세기 독일인들에게는 오죽했겠는가? 나의 영화 감상은 뒷좌석에 앉은 두 여인-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의 하염없는 흐느낌을 동반했다. 그뤼네발트의 제단화 앞에 선 16세기 독일인들의 반응이라고 달랐을까?
예수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심문을 받는 장면은 촛불이 비치는 갈색의 이미지, 렘브란트의 작품의 색감을 따랐다. 예수를 조롱하는 자들 중에 언뜻 기괴하게 생긴 얼굴이 등장한다.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작품에 나오는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인용한 것이다. 한 여인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에게 수건을 건넨다. 다시 넘겨받은 수건에는 핏자국과 땀자국이 만들어낸 예수의 얼굴이 찍혀 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이른바 ‘베로니카의 수건’의 전설로, 중세 이후 빈번히 묘사된 장르다.
영화 전체는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성경을 재현하고 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이른바 공관복음(synopticum), 말하자면 예수의 네 제자가 함께 본(共觀) 것의 기록이나, 서로 기술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대제사장 가야바와 대면하는 장면은 주로 마태복음을 인용한 것이고, 빌라도와 대면하는 장면은 요한복음에 바탕을 둔 것이다. 두 도적 중 하나가 회개하는 장면은 누가복음, 사형수들이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다리뼈를 부러뜨리는 장면은 요한복음에만 등장한다.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수를 판 가롯 유다가 자살하는 장면. 나무에 달린 그의 몸 아래로 썩어서 구더기가 들끓는 당나귀의 시체가 보인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탔다던 그 나귀일까? 그때만 해도 유대인들은 나귀를 탄 메시야의 앞길에 제 웃옷을 벗어 깔아주고 ‘호산나’를 외쳐댔었다. 그렇게 열렬히 그를 환호하던 자들이 왜 이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저토록 아우성을 치는가? 저들은 예수에게 무엇을 기대했으며, 예수는 대체 저들에게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예수는 말한다.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그러자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요한 19:38) 성경의 이 장면은 그뒤로도 여러 번 반복될 비극의 인류사적 원형이 아닐까? 그 어떤 인간도 예수처럼 스스로 진리(veritas)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카인의 피가 흐르는 인간에게 남은 길은 두개뿐. 진리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유대의 백성이 되거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빌라도가 되거나….진중권/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