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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루자, 쥐떼, 그리고 광주

또 쥐떼가 나타났댄다. 1980년에는 한국이더니, 이번에는 이라크의 팔루자랜다. 미군 합참의장 리처드 마이어스란 자는 미군이 지난 3월31일 발생한 미국 경호회사 직원 4인의 시신손상사건의 범인 체포를 위해 팔루자에 들어갔지만, “우리가 찾아낸 것은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거대한 쥐떼들의 소굴이었다”라고 말했단다. 1980년 8월, 광주의 학살자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려 할 때, 외국기자들은 주한 미군사령관 위컴에게 한국 사람들이 과연 전두환을 지지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위컴은 한국인들은 쥐떼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그를 따라갈 것이라면서, 이미 한국인들은 쥐떼처럼 전두환 뒤에 줄을 서고 있다고 말했다. 위컴도 미국에 돌아가 육군 참모총장이 되었으니, 미군 최고지휘관의 자격 요건에 혹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쥐떼로 보는 탁월한 감식안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절망감마저 들게 된다. 학살, 그 모진 일은 학살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을 때 일어났다.

팔루자에서 미국 경호회사 직원들의 시신이 훼손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미군 진주 뒤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리는 바그다드 시민들의 모습만 기억하는 미국의 일반 시민들에게 그 광경은 더더욱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 찌든 이라크 국민들에게 그 광경은 별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머리가 터지고,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아니, 문자 그대로 뼈도 못 추리는 주검이 즐비한 게 전쟁의 현실이고, 이런 현실 속에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하루에 수십명이 새로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시신이 죽을 때 손상된 거냐 죽고 난 다음에 손상된 거냐는 차이가 과연 얼마만큼 절실한 문제일 수 있을까? 한국의 평화운동단체인 이라크평화네트워크가 발행한 <이라크의 광주-팔루자 학살의 증언>에 의하면 거리에는 채 묻지 못한 시체가 널려 있고, 개가 시체를 뜯어먹고 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노근리를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군은 ‘움직이는 것’은 모두 쏘아대고 있다고 한다.

지금 한국 정부와 사회 일각에 포진해 있는 무조건 파병론자들은 이라크 상황이 급변한 다음에도 국제사회와의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면서 이라크 파병을 고집하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됐던 한국인 인질들이 무사히 풀려난 것을 두고 이라크 사람들이 한국 사람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가며, 혹시라도 파병을 못하게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솔직하게 우리 자신에게 우리가 이라크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할지 한번 물어보자. 이라크 사람들 처지에서 생각하기 힘들다면 의병항쟁 때나 3·1운동 때를 생각해보면 된다. 일본군이 힘들다고 다른 외국군이 일본군 도우러 들어오면, 우리는 그 나라가 10여년 전에 길 잘 닦고 공사 잘했다고 환영할 것인가? 국제사회에 대해 한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말도 그렇다. 과연 우리가 지금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 미국이 자행하는 학살을 결과적으로 도울 수밖에 없는 파병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더이상의 학살을 막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할 것일까? 보이스카웃 캠핑을 보내는 것도 아닌데 국방부는 ‘안전’한 주둔지만 찾다가 지난 몇년간 폭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대한 시한폭탄인 쿠르드 지역에 깃발을 꽂겠다고 한다.

우리는 외국군에 의해 해방과 점령과 학살을 모두 경험했다. 광주 때는 미국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광주 시민들을 돕기 위해 항공모함을 파견했다고 좋아하다가, 미국의 지원을 받는 학살자들의 무자비한 진압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군 사령관은 우리를 쥐떼라고 불렀다. 노근리를 겪은 우리가, 광주를 겪은 우리가 정녕 이라크에 파병해야 하는가?

월드컵 때 시청 앞 광장에는 100만명이 모였고,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하는 촛불집회에는 10만명이 모였다. 그러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매일매일 또 다른 효순이, 미선이가 생겨나는 것을 막아보자는 반전평화집회에는 1만명에 한참 못 미치는 사람들만 모이고 있다. 이라크 문제가 긴박하게 돌아갔지만, 탄핵에 매몰된 한국사회는 파병문제에 응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이라크 전쟁 나쁜 거 다 알지만 미국한테 찍히면 곤란하니까, 또는 이라크 파병 이미 결정난 거니까 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달며 파병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 어느 자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애송시는 윤동주의 <서시>라는 말을 듣고 괜히 화가 났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을 그린다는 사람들이 정말 무슨 생각으로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일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저 학살의 땅에 미군을 도우려 기어이 군대를 보내겠다는 대한민국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파병국가의 국민된 도리를 다해야 하는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