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호모 사피엔스의 고민은 거기서 끝이 났다고- 내 낡은, 중고생을 위한 영한 대역, <햄릿>의 책장을 덮으며 나는 생각한다. 죽느냐, 사느냐. 돌이켜보니 나도 그런 엇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설마하니 중고생 때의 일이었고, 무렵의 나는 <중고생>이라는 이름의 부업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였다. 아, 그리운 호모 사피엔스의 시절, 시절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고, 지금 나는 아이 팟(i Pod)이라는 이름의 MP3플레이어에 꽂혀 있다. 매우 사고 싶다. 매우, 사고 싶어. 카탈로그의 제품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작살에 꽂힌 생선처럼 마음이 퍼덕, 인다. 오 마마미아. 새하얀, 뉴 모델의 아이 팟이 갖고 싶어, 란 제목의 소설을 쓰거나, 그림이라도 그리고 싶다. 그려야겠다. 목 말라, 숨이, 막혀. 이건 흡사 죽느냐, 사느냐(to buy or not to be)가 아닌가.
그런 나는 그런 나고, 인류는 크게 원인(猿人)에서 원인(原人)을 거쳐, 다시 구인(舊人)과 신인(新人)으로 진화해왔다고 한다. 쉽게 말해 원숭이가 인간이 되고, 농경과·목축을 시작하고, 마침내 혁명적 생산수단을 발명하여 문명의 꽃을 피웠다는 얘기, 되겠다. 한 마리의 원숭이가 삶과 죽음의 논제 앞에서 고민하기까지에는, 대략 수백만년의 시간이 소요되어야 했다. 셰익스피어! 이 깍쟁이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고, 나는 더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다. 대략 그런 생각이 든다, 드는 것이다. 모니터 가득 뉴 모델의 아이 팟 사진을 펼쳐놓고, 나는 또다시 고민에 빠져든다. 격랑(激浪)이다. 아아 누가, 아이 팟 하나만 사주세요. 아아 제발, 나는 어쩌면 새로운 신생 인류- 이를테면 호모 컨슈머스(homo consumers)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 아이 팟 하나만 사주세요. 하나님 메르세데스 벤츠 하나만 사주세요. 제발이요. 재니스 조플린도 노래 불렀지.
재니스 조플린은 재니스 조플린이고, 현생 인류인 우리는 이미 호모 사피엔스가 아닐지도 모른다. 신(神)과 지혜, 죽음과 삶의 명제 따위 이미 뻔한 것이 돼버렸다. 아니, 지금 그럴 시간이 없다. 사고 싶은 건 쏟아져나오고, 사야 할 게 너무나 많다. 사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사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죽느냐 사느냐(to buy or not to be), 문제는 그것이다. 소비자로서의 나, 소비자로서의 인간- 즉 그런 의미에서의, 호모, 컨슈머스.
그런 의미는 그런 의미이고, 사전은 다음과 같이 소비자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소비자(消費者, consumer): 사업자가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생활을 위하여 구입하거나 사용하는 사람. 더불어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 중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생물- 호모 사피엔스가 되기까지 수백만년을 소모했던 인류는, 불과 이백년 만에 호모 컨슈머스로 진화했다. 이것은 진화인가 전락인가? 인류의 지혜란 무엇이었을까? 인류의 지혜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 걸까? 당신에겐 지혜가 남아 있는가? 또 당신은 스스로의 양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죽느냐 사느냐,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박민규/ 무규칙이종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