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0달러 내외인 DVD와 15년 전에 40달러 전후였던 LD의 가격은 그동안 급등했던 물가 상승을 고려한다면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1988년에 2장짜리 <카게무샤> LD의 가격은 7만원 정도로, 당시 대학가의 1달 방세와 맞먹었습니다). 어지간한 애호가들도 구입에 부담을 느낄 정도였던 LD의 비싼 가격이 국내에서의 LD 보급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고, 그것이 LD가 대중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에 비해 DVD는 처음 출시될 때부터 비디오 테이프보다도 더 싼 2만원 내외로 가격이 책정되었기 때문에 영화 애호가들은 부담없이 비디오 테이프에서 DVD로 소장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거치형 시스템이 아닌 컴퓨터의 DVD롬으로 자신의 방에서 독립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공간적인 장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DVD는 기본적으로 LD의 400라인과 큰 차이가 없는 480라인의 SD급 해상도만을 지녔기 때문에, 폭발적인 수요 증가와 시장 확대에도 불구하고 발매 초기부터 매체의 단명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 까닭은 바로 HD 때문입니다.
480라인의 SD급보다 2.5배 이상 많은 1080라인의 고해상도 영상 정보량을 담고 있는 HD는 일본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일찌감치 Muse 방식으로 송출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디지털 HD 방송은 1990년대 후반에 미국과 일본이 경쟁적으로 시작하였고, 현재는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HD 방송이 송출되고 있습니다. HD의 1080라인은 물론 2000라인 이상인 필름의 정보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필름의 경우에는 현상과 복제 과정에서 손실되는 정보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필름에 거의 육박하는 해상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일반 가정에서 HD 영상을 볼 수 있는 상태이고, HD급 디스플레이가 갖춰진 상태에서, 그보다 화질이 훨씬 떨어지는 SD급의 DVD가 언제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고민은 자연스럽게 포스트 DVD 매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HD 방송은 전용인 D-VHS 테이프나 S-VHS 테이프로 HD 포맷 그대로 녹화·복사가 가능하고, 블루 레이 디스크로도 저장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HD 영상이 수록된 상업용 매체는 아직까지 광 디스크 매체는 없고, D-Theater라는 테이프 형태로 미국에서만 발매되고 있습니다.
위성을 통해 방영되는 HD 프로그램의 19Mbps보다도 더 우수한 28Mbps의 영상 신호와 DVD의 하프 레이트(754kbps) DTS의 두배에 달하는 풀 레이트(1509kbps) DTS 사운드를 함께 수록한 D-Theater 테이프는 현존 최고의 고화질과 고음질을 과시함으로써 현재 AV 애호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애초에 2007, 2008년경으로 예정되었던 HD-DVD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거부감과 지지부진한 포맷 확정 작업 때문에 어쩌면 2010년까지 미뤄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들려, DVD와 D-Theater의 공존이 예상보다 더 오래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김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