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결혼 10주년 기념파티에 초청받은 이레네는 주빈인 레오노르에게 “요즘은 아무도 10년 동안 결혼을 유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또한 “10년의 결혼생활이란 60피트 땅밑에 묻혀야 하는 것”이란 말도 빼먹지 않는다. 이레네의 애인 미셀은 레오노르와 해변을 걸으며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귀가한 레오노르는 남편에게 10년 전부터 사랑하지 않았노라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 이야기. 결혼한 지 10년째인 이혼전문 변호사 메리앤과 교수 요한은 완벽한 부부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어느 날 요한은 아내에게 새 여자가 생겼음을 선언하고 짐을 꾸려 바로 파리로 떠나버린다. 현재 활동 중인 감독 중 최고령인 올리베이라는 결혼을 그다지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노거장은 마치 <나는 집으로 간다>에서 미셸 피콜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손자처럼 아이의 관점에서 결혼을 바라본다. 때문에 그가 그리는 외도는 긴장되지 않으며 사랑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반면 베리만의 결혼 이야기들은 잔인하다 못해 악몽에 가깝다. 그에게 있어 부부란 대결을 통해 언제나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관계인 것처럼 보인다.
올리베이라의 <파티>에서 두 커플은 5년 뒤 다시 만난다. 레오노르는 미셀과 함께 떠날 듯 보이지만 결국 남편을 다시 받아들인다. 베리만의 <결혼에 관한 몇가지 장면>에서도 매리앤과 요한은 10년 뒤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은 재결합 할 듯 보이지만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베리만의 입장에서 올리베이라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닌 또하나의 ‘마리오네트의 생’일 것이고 올리베이라에게 베리만의 결혼은 문학적이지 못한,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일는지 모른다.
자정에서 새벽 사이의 ‘늑대의 시간’에서 사랑을 재확인하는 매리앤과 요한의 마지막 장면이 해피엔딩은 될 수 없겠지만 편안한 느낌을 준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혼이 아니고 사랑이 아니었던가? 두려운 것은 이혼이 아니라 사랑을 잃는 것이다. 사랑을 유지하기 위하여 진실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두 거장은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 <파티>의 화면비는 애초부터 TV용으로 제작된 <결혼에 관한…>처럼 4:3이었으니 분노하지 말자. <결혼에 관한…> DVD는 굵은 입자가 담기고도 화질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조성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