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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카메라를 든 감독 리사 마도에린
박혜명 2004-04-22

한국계 스위스인 다큐멘터리 감독 리사 마도에린

올 여성영화제 게스트인 리사 마도에린 감독은 한국계 스위스인이다. 그의 단편 <세상 끝까지>는 일본인 유부남과 한국인 미혼녀의 짧은 사랑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그들은 그의 부모다. 사생아로 태어난 리사 마도에린은 외삼촌 호적으로 출생신고를 냈다가 2년 뒤 엄마가 스위스인과 재혼하면서 한국에 사망신고서를, 스위스에 다시 출생신고서를 냈다. 한국에선 사라진 지 오래이고 세상에는 두번 태어난 셈이다. 스위스와 한국 어디에도 자신은 완전히 속해 있지 않다는 그는, 부모의 이야기로 첫발을 뗀 자신의 이야기를 지금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한국어를 왜 전혀 못하는지.

한국어를 배우려고 했다. 97년 한국에 머물 때 연세어학당도 다녔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공간이 억압적으로 느껴져서 힘들었다. 어릴 때 한국에 살면서 3년간은 한국어를 했었다. 동화구연대회 나갔을 때 녹음해놓은 테이프도 있다. 물론 지금은 하나도 못 알아듣는다. 게다가 엄마가 스위스에 와서 적응을 빨리 했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한국에 올 생각을 한 이유는.

평소엔 잘 지내다가도 거울만 보면 내 얼굴은 스위스인이 아니라 아시아인이었다. 내가 어디서 왔나 하는 뿌리를 찾고 싶은 욕망이 내부에서 생겨났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스위스에 있을 때 외모가 달라서 이방인임을 느꼈던 터라 한국에 오면 쉽게 일부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한국말이 잘 안 되니까 입양아, 동포들과 친해졌는데 그 사람들하고도 말이 안 통했다. 여기서 더 이방인이 된 듯했다.

영화감독을 꿈꾸게 된 계기는.

영화를 좋아했지만 감독이 될 줄은 몰랐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마케팅 회사에 들어갔는데 과자봉지가 녹색이 좋은지 빨강이 좋은지 이런 시시콜콜한 걸 따지는 게 싫어서 일을 관뒀다. 그뒤 대학에서 영화사와 예술사를 공부하다가 난 분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야 되는 사람임을 알고 취리히 영화학교를 들어갔다.

다음 작품은 어떤 건가.

문화정체성, 국적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은 조사 단계다. 문화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나는 내가 현재 속한 문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등 나 같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탐구해보고 싶다. 한국에 사는 스위스인들, 스위스에 사는 한국 사람들을 많이 인터뷰할 생각이다.

글 박혜명·사진 정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