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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강유원(철학박사) 2004-04-16

세상 사람 전부에서 보면 몇명 되지도 않는 게 책 읽는 사람이고, 또 그중에서도 책을 아끼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 사장이나 편집주간이 반드시 책을 열심히 읽거나 아끼는 사람은 아닐 테고, 책을 만드는 편집자나 디자이너, 제작자도 반드시 그렇다는 법은 없다. 어쨌든 책에 관련된 직업은 여러 종류인데 그 직업에 속한 사람은 일단 기본적으로는 자기 직업의 구체적인 실무에 기반을 두고 책을 대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떤 책을 아낀다고 말할 때에도 그 기준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남의 기준이 뭔지 만나서 물어볼 것도 아니고, 묻자니 서로 낯간지러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테니 뭐 궁금해도 그냥 접어두고 내 이야기나 해보자.

내가 책을 아끼는 기준은 내용에 달려 있지 않다. 예전에는 구하기 어려운 학술서적 같은 걸 비싼 값 주고 사면 기분이 좋아지고 굉장히 아끼곤 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랴 싶은 마음이 들면서 욕심이 싹 가셨다. 아무리 값나가는 책이래도 집착이 안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달라면 선뜻 주지는 못하지만. 어차피 헌책인데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죽을 때 내 옆에 함께 쌓아서 태워 없애버리고 싶어서다. 내가 얼마나 인생을 낭비하면 살았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요즘 그런 비싼 책 다 놓아두고 틈만 나면 꺼내보고 쓰다듬고 하는 책이 있다. 그 말의 표면적인 뜻 그대로 ‘좋아서’ 그런다. 보고 있으면- 읽는 게 아니다- 기분이 편해지고, 만지고 있으면 그 재질 때문에 흐뭇해지고 책장을 펼쳐서 그 사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면 약간 찌릿해지기도 하는, 오감한테 이른바 총체적 만족감을 안겨주는 책이다.

그건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독일어판이다. 가로 105mm, 세로 180mm, 다 해봐야 143쪽밖에 되지 않는 작고 얇은 책이다. 한손에 쏘옥 들어온다. 본문에는 아무 삽화도 없이 8포인트 정도 되는 글자들만 상하좌우 여백도 거의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책의 이념이란 게 있다면 그것에 완전히 합치하는 게 이 책 아닐까 싶다. 편집도 너무나 깔끔하여 면지라는 것도 없고 표지를 들추면 곧바로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저자 약력 페이지가 나오고, 그 다음은 하프 타이틀 페이지로 책의 제목과 출판사가 표기되어 있으며, 그 뒷면에는 저작권 사항, 그리고 곧바로 그 다음 페이지에서 서문(Vorwort)이 시작된다. 조금의 과잉도, 모자람도 없이, 기름기를 쫙 뺀 편집이다. 기특하고 갸륵하다.

<소설의 이론>이 책의 이념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표지에서 완성된다. Deutscher Taschenbuch Verlag에서 1994년 4월에 찍은 이 책의 표지에는 오른쪽 정렬된 글자들만 여섯행 박혀 있다. 제일 윗줄에 저자 이름 Georg Lukacs, 그 다음 두줄에 책제목 Die Theorie des Romans, 그 다음 두줄은 부제에 할당되었다. 그리고 책 아래쪽에 출판사 이름과 시리즈명인 dtv wissenschaft가 한줄로 들어가 있다. 책 뒤표지, 즉 표4에는 이 책에 대한 핵심적 설명 여섯줄이 책 왼쪽 위에, 그리고 왼쪽 아래에는 dtv라는 출판사 이니셜이 있다. 너무도 간단해서 그 옆에 인쇄된 바코드가 엄청난 디자인 요소로 보일 정도이다. 그래 이거말고 뭐가 있겠어.

이 책을 앞에 두고 있으면 “별이 빛나는 하늘이,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였던, 그리고 그 길을 별빛이 비춰주던 시대는 행복했었다”는 이 책의 유명한 첫 문장이 안겨주는 흥분 따위는 오히려 그 싸늘한 표지에 부딪혀 고요하게 잦아들고 만다.

누구에게나 이런 감흥이 일어나는 건 아닐 게다. 어쨌든 책에 관련된 직업은 여러 종류인데 그 직업에 속한 사람은 일단 기본적으로는 자기 직업의 구체적인 실무에 기반을 두고 책을 대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니, 세상 사람 전부에서 보면 몇명 되지도 않는 게 책 읽는 사람이고, 또 그중에서도 책을 아끼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강유원/ 회사원·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