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 한심함에 우울해진다. 눈물의 드라마란 형식과 어쭙잖은 달동네 메시지엔 진실이라곤 없다. 그들에게 마야 데렌의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그녀의 작품은 만들어진 시기를 의심받을 정도로 현재도 유효한 패션과 모던한 감각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의식의 흐름과 시간과 공간의 왜곡, 과감한 편집이 함께하는 이미지를 통해 의식의 확장과 대상의 낯설게 보기를 유도한다. 이 모든 것은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작가의 치열한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부분 무성영화인 데렌의 몇 작품에 음악을 덧입혀 보면, 이 작품들을 뮤직비디오의 선구적 위치에 둬도 손색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1943년에 만들어진 뒤 1959년에 이토 데지의 음악이 입혀진 <오후의 올가미>에선 음악과 영상이 치밀한 대화를 나누며, <육지에서>는 허브 릿츠가 만든 마돈나의 뮤직비디오 <체리쉬>의 모태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미적 성취는 펫 샵 보이즈의 뮤직비디오에도 적용된다. 기실 그들은 “춤출 수 없는 대상이라면 그건 혁명이 아니다”라고 했던 아나키스트 에마 골드만의 충실한 후예였다. 로맨틱한 멜로디의 댄스 음악이 주특기인 그들의 뮤직비디오가 특별했던 건 데릭 저먼 같은 작가와의 조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먼은 케네스 앵거의 <불꽃놀이> 같은 작품에서 게이 코드와 불안감, 성적 긴장, 판타지를 들고온 뒤 특유의 콜라주와 시대정서를 더해놓았다(물론 이것은 이전의 ‘스미스’나 이후의 ‘스웨이드’와의 작업과 연결된다). 이러한 저먼과의 관계는 펫 샵 보이즈의 이후 뮤직비디오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들만의 유토피아 혹은 원더랜드 속에선 윌리 넬슨의 컨트리 발라드와 레닌의 이미지 그리고 육체에의 탐닉이 공존한다(그중에는 이안 매켈런이 드라큘라도 분해 허밍과 애교 섞인 몸짓을 보여주는 <하트>도 있다). 이렇듯 뮤직비디오란 작업은 생산적이고 혁명적인 매체의 생산에 이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소비적 대중문화 영역에서 문화적 게릴라의 역할 정도는 수행해야 할 것이다. 안일하고 비루한 현실의 균열을 통한 작은 혁명 말이다.
두 DVD는 어차피 AV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만족감은 그와 반대다. 단 <마야 데렌 작품집>은 제작사의 홈페이지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다. 이용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