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TV를 보다
평범해서 주눅든 사람들을 위해

당신은 특별한가? 세상의 많은 부부들이 결혼을 순조롭게 이어가지 못하고 파경을 맞는 것에 비하여 굳이 결혼생활이라는 것을 유지하고 있다면, 또는 막 태어난 신혼의 쌍들이 출산과 육아를 거부하여 출산율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는데도 힘들게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특별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런 특별함을 보여줄 길이 없다. TV를 틀면 온갖 특종들이 난무하고 이 세상은 정말 놀라운 곳임을 상기시켜준다. 우리네가 가진 특별함은 어딘가로 실종되고 ‘평범’이라는 이름으로 거부된다. 유별나지 않으면 존재의 이유가 없을 것만 같은 세계 속으로 한발한발 빠져들어간다.

발차기가 그림 같은 ‘마샬아트’의 달인, 예술 같은 볼링장면을 선사하는 시각장애인, 물구나무서서 온갖 기교를 부리는 기인들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세상이 저런 일이” 하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만 세살도 안 된 아기가 ‘리틀 석가모니’가 되어 있질 않나, 초등학생인 ‘리틀 황비홍’이 날아다니질 않나…. 그 어린 석가모니께 정중한 합장을 드리면서 어린 황비홍이 진짜 황비홍처럼 성장할 수 있도록 기원해야 할 것만 같다. 게다가 삼겹살집에서 한몫 단단히 하는 돼지(!)나, 거꾸로 서서 재주부리는 견공(!)이나 누워서 자는 금붕어(!)까지 그 ‘특별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아차차! 아직도 우리는 특별한데 그들의 신기함을 그냥 재미로 봐넘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 놀라운 세상의 특종을 메우는 인간들과 동물들만이 ‘봐줄 의무’를 우리에게 떠넘기고 ‘보여줄 책임’을 자임하는 것을 그대로 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혹시 우리가 가진 특별함을 확인할 길이 없을까 하고 <인간극장>을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우리네 같은 인간들이 있는가 하고서….

엄마가 없는 다섯딸과 쌍둥이 아들을 키우는 불쌍한 판곤씨가 나왔다. 그리고 위암 말기 환자인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옥탑방의 세 자매도 등장했다.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언니와 잃어가고 있는 동생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놀랍게도 이곳에 들렀더니 예상과는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특별함이 확인된다. 저들의 불행한 현실은 우리가 누리는 이른바 ‘평범한 생활’을 최상의 기준으로 하여 향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정상의 가족, 정상의 시력, 정상의 체력을 향해 가는 그들의 힘겨운 노력에 자꾸 마음이 무거워진다.

오히려 안타깝게도 극장 속의 그들은 그들의 삶이 정상적인 평범함에 못 미쳤기 때문에 우리의 특별함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그런데 속에서는 ‘평범하다’고 거부된 우리의 특별함이 앞을 못 보는 자매들의 불행을 딛고 서 있는 것만 같아 돌덩이 같은 죄의식이 견딜 수 없이 짓눌려졌다. 결국 그런 의미에서 그들 역시 실제로는 볼 만하고 보여줄 것이 있는 특별한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과시할 만한 신기한 재주나 유별난 이야기가 우리에게 부재할 뿐만 아니라 ‘보통’에 턱없이 못 미치는 불행이 부재하다는 데서 우린 또다시 그저 보통의 평범한 사람임을 확인해야 했다. 지나치게 특종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딱히 죽을 만한 불행이 덮쳐오지 않았음을 나름대로 감사하면서….

결국 ‘보통’이나 ‘평범’의 기준을 상정하고 위에서는 유별난 특종을, 아래에서는 남보다 못한 극단의 불행으로 보여줄 것들을 나열하면서 위나 아래가 아니면 보통의 평범함으로 몰아붙이는 TV의 위력 앞에서 우리가 무력하다는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참패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느낌들 기쁨, 슬픔, 노여움, 즐거움, 애잔함 등을 특별하고 소중한 것으로 만들면서 삶을 가꾸어가고 싶다. 특종들에 주눅들고 남들의 불행 앞에 죄의식으로 쪼그라들지 않으면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도 또다시 평범해진다. 남들은 잘도 갈라서는데 아직도 결혼생활이라는 것을 유지하고, 남들은 딸린 아이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이다. 도대체 저들은 왜 특별해지고 싶은 우리를 자꾸 평범함 속으로 가라앉히는가? 잘 모르겠지만 알고 싶기는 하다. 보잘것없는 특별함으로 우쭐거려보고 싶은 우리네의 오만이 잘못인지, 특종을 찾아나서지 않을 수 없는 TV가 우리를 평범함으로 짓누르는 것이 잘못인지를. 그러나 무엇이 잘못된 것이건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리라. 그날이 올 때까지 TV 속을 마구 헤매다닐 것이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우리의 특별함이 확인되는 그날까지! 素霞(소하)/ 고전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