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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

나는 ‘대한민국 1%’다. 물론 고급승용차를 타는 1%가 아니다. 92년 1.0%, 97년 1.2%, 2002년 3.9%. 내가 찍은 대통령 후보들이 얻은 득표율이다. 투표 경력 10년이 넘었지만,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은커녕 당선권에도 들어가본 적이 없다. 좋게 말해서 정치적 소수자고, 나쁘게 말해서 철없는 똘아이다.

축제가 한창이다. 뉴스에도 중계된다. 축제의 슬로건은 ‘Again 1987’, 노래는 ‘아 옛날이여’, 준비물은 촛불이다. 긴 밤 지새우며 이들이 할 일은 “6월 항쟁의 쓰다만 뒤 페이지를 다시 쓰는 일”이다.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촛불을 들어야 마땅한 분위기다. 잠시 그의 과오는 잊고, 적들의 침탈에 맞서야 한다. 상식있는 자는 광분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1%는 그 상식에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1%는 공화국의 헌정질서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다. 그저 대한민국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만 많다. 초라한 1%는 졸지에 상식없는 놈까지 된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또다시 두개의 계급만이 존재한다. 탄핵 찬성이냐, 반대냐. 이쪽이냐, 저쪽이냐. “음… 이쪽에 반대하지만, 저쪽도 잘못한 점이…”라고 설명하려는 순간 양비론이라는 비아냥이 돌아온다. 회색지대는 없다는 충고가 들려온다. 대한민국 1%의 말문은 막힌다. 아나키스트 봉기는 왜 안 하냐는 농담을 하며 배시시 웃어야 한다. 뜬금없는 ‘막말’을 해서 망가뜨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때때로 세상이 두쪽으로 갈라져 싸우는 시절이 오면, 1%는 ‘비국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한다. 어느 방송사도, 어떤 신문도 그들의 목소리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전투가 부럽고, 왕따라는 사실이 뼈저리다. 요즘엔 온통 탄핵 반대의 목소리에 포위된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온갖 상념이 스친다. 저 무수한 선후배, 친구들처럼 왜 ‘상식’을 가진 시민이 되지 못하는가? 자유주의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혹시 사촌이 땅사니까 배아프냐?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알 수 없는 분노가 들끓고, 약간의 우울증마저 도진다. ‘옳은’ 쪽으로 가 있는 사회에 태어난 팔자 탓이다.

텔레비전마저 지루해진다. 솔직히 13시간 탄핵 관련 방송이 지겹고, 비슷비슷한 인물이 왈가왈부 시시비비하는 모양새도 짜증난다. 탄핵 직후, “현 정권의 수도 이전 공약에 기대를 걸었던 충청권 시민들은 탄핵안 통과에 실망하고…”라는 지역주의 리포트를 할 때는 그저 경악할 뿐이다. 차라리 앵무새 같은 뉴스보다 프로농구 플레이오프가 궁금하다.

그렇다, 다시 양비론이다.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여론 조작”이라는 ‘한민당’의 억지생떼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지만, “우리는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공영방송의 변론도 솔직하지는 않다. 한국의 리버럴은 ‘공공선’을 참 좋아한다. 어떤 연예인은 입당 하루 전까지 손사래를 치고, 누가 봐도 정파 모임인데 시민단체라고 우긴다. 이런 ‘위선’을 깨는 일도 정치개혁의 일부다. 정치란 무릇 나쁜 것이라는 ‘구시대’적인 사고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파적이라는 게 뭐가 부끄러운가.

사실 대한민국 뉴스는 아주 정치적이다. 그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만큼 무엇을 보여주지 않느냐로 드러난다. 브라운관 너머로 공영방송이, 상업방송이 어떻게 진보정당을 왕따시켜왔는지 돌아보자. 여론조사 발표에서 제외하고, 토론 프로그램에서 배제하고. 물론 고의가 아니라고 한다. 고의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고의가 아니라서 더 무섭다. 진보는 안중에도 없는 그들의 무의식이 더 무섭다.

오늘도 광화문 축제는 계속된다. 친구는 오늘도 전화를 걸어 축제에 초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안과 이라크를, 김주익과 박일수를, 다라카와 비쿠를 기억하는 한, 그를 위해 촛불을 들 수는 없다. 짱나는 세상, ‘발리’가 그립다. 재민씨∼, 수정아! “사랑해요”. 그 마지막 한마디가 사무친다. 발리러버 만세! 만세! 만세!

추신. 그날 국회 의사봉은 절대반지 같았다. 사악한 무리들이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순간, 나 또한 경악했고, 절망했다. 세상은 파멸로 치닫고, 악의 제국이 태어나는 줄 알았다.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 절대반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의 애국가도 내 마음을 치지는 못했다. 그저 절대반지는 위험하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원정대가 필요하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