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걸리버 여행기

몇년 전 독일에서 본 방송. 의회의 몸싸움 장면을 엮은 것이다. 먼저 러시아 의회. 한 의원이 나오더니 단상의 물컵을 집어 연설하는 다른 의원의 얼굴에 들이붓는다. 물벼락을 맞은 의원, 당장 상대의 멱살을 잡는다. 일본의 의회. 과거의 군국주의 전통이 남아 있어서일까? 야당 의원들이 표결을 저지한답시고, 슬로모션으로 제자리걸음을 한다. 황군의 제식훈련을 보는 듯. 다음은 인도 국회. 파키스탄과 포격전을 벌이는 나라답다. 여야 의원이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갈려 닥치는 대로 집기를 들어 상대방 진지로 날린다. 그 사이에 머리 깨진 부상병들이 쉴새없이 들것에 실려나간다.

압권은 대만 의회. 여기에는 소림사가 살아 숨쉰다. 한 의원이 단상에 올라가 사방에서 달려드는 적들에게 발차기를 날린다. 그 민족이 브루스 리와 재키찬을 배출한 게 우연이겠는가? 이 장면을 보여주며 거리를 지나는 한 여인에게 소감을 묻는다. “저게 다 남성들이 만든 정치예요.” 페미니스트였나보다. 순간 카메라는 한 여류 협객이 하이힐을 휘둘러 남성 의원들을 제압하는 화려한 무공을 비춘다. 카메라는 짓궂은 마초였나보다. 우리 국회에서도 개싸움이 벌어졌다. 조선시대 유생들의 “불가하오” 버전, 구한말 지사들의 “시일야방성대곡”이다. 이렇게 하찮은 몸싸움 하나에도 민족의 유구한 전통과 역사는 어김없이 반영된다.

사태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쪽수 믿고 폭거를 저지른 야당한테 있다. 탄핵을 걸려면 제대로 걸든지, 들고 나온 사유란 게 어처구니가 없다. “대통령이 사과를 안 해서.” 국어실력이 빵점이다. 이 꼴통들아, 사과를 안 하면 ‘유감’이지 왜 ‘탄핵’이냐? 밥그릇 챙기는 데에 도가 튼 이것들이 왜 제 명줄 끊는 무리수를 두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부조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주는 가설은 딱 하나다. ‘얘들은 미쳤다.’ 얘들은 대체 왜 태어나서, 뭐 하러 존재하는 걸까? 말이 필요없다. 이번 선거에서 요 말썽꾸러기들,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려야 한다. 선거란 본디 존재 이유가 없는 자들의 존재를 지우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잘한 거 하나 없다. 뭐 대단한 개혁질이라도 하다가 그랬다면 모르겠다. 탄핵당한 빌미가 기껏 선거법 위반. ‘국가원수’로서 쪽팔린 줄 알아야 한다. 도대체 노사모 모임에는 뭐 하러 나가고, 기자 만나 쓸데없는 얘기는 무엇 때문에 하고, 폭발할 거 뻔히 알면서 아무 관계도 없는 총선과 재신임의 심지를 왜 서로 연결시키는가. 대통령직이 고작 선거대책본부장 자리인가? 그러잖아도 지지율 바닥을 헤매는 판에 직무에나 충실할 일이지, 쓸데없는 선거개입 발언으로 매일 신문지면이나 어지럽히다가 기어이 선관위로부터 경고나 받고. 그게 국정운영인가?

사과도 거부하고, 4당대표 면담도 거부하고, “헌재의 판결은 다를 것”이라며 발휘한 특유의 “승부사 기질”. 탄핵이 가결되어도 손해 볼 것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불쑥 내민 대통령의 배짱의 삼겹살에 야당은 지그시 엽기의 칼을 담근다. ‘배째라’니까 정말 짼다. 탄핵이 고작 대통령 배 따서 사과 끄집어내는 도구인가? 배짱과 엽기의 대통령배(盃) 개싸움. 이기는 팀은 대통령 먹는다. 두팀이 맞붙자 나라는 졸지에 대박의 기대와 피박의 초조가 교차하는 거대한 도박판이 되어버린다. 뭐 하는 짓들인지. 대통령이 딱지냐? 정치가 짤짤이냐?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사람들은 계란의 뾰족한 부분을 깨느냐, 납작한 부분을 깨느냐를 놓고 전쟁을 벌인다. 우리에게는 우스워도 저들은 마냥 진지하다. 소인국이 따로 있나. 고작 선거법 사안으로 내전 상황이 벌어진다. 사람이 분신하고, 차량이 돌진하고, 건물이 폭파 협박을 받는다. 이걸 사안이라고 다룰 헌재의 근엄함이 우습고, 먼지 쌓인 운동가 부르며 “6·10항쟁” 속편 찍는 오버액션의 비장함이 찜찜하고, 이 부조리를 ‘운명’으로 그러안은 채 이 빌어먹을 두 소인국 중 하나를 고르도록 강요받는 시민들의 팔자만 불쌍하다. 진중권/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