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이창
플로베르
강유원(철학박사) 2004-03-24

플로베르는 자기 책에 그림이나 삽화를 싣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했다는 말을 어떤 책으로부터 옮겨보자: "등장 인물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순간, 보편적인 성격은 사라져 버리고 이미 알려진 많은 사물 가운데 하나처럼 되고 만다... 결국 삽화나 그림은 이해력과 상상력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글로 묘사된 내용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는 매우 민감한 미학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어떤 종류의 삽화나 그림도 반대한다." 참 애쓴다. "매우 민감한 미학적인 문제"라는 구절에서는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그림은 모두 다 구체적인가? 추상미술 작품을 보면 그건 아닌거 같다. 그것은 그림인데도 그것으로부터는 구체적인 것을 읽어낼 수가 없다. 그걸 읽어내려면 뭔가 고도의 훈련을 받아야만 할 것 같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도 있고, 그림으로도 드러낼 수 없는 뭔가가 있다면 - 그게 있는지 없는지 어찌 알겠는가마는 있다고 치면 - 입을 딱 다물고 있는게 낫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플로베르가 자기 책의 내용을 좀 더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그런 미학적 챙기기에 나섰다면 그는 그림이니 삽화니 하는 것들 가지고 신경을 곤두세우느니 차라리 책의 제본이나 크기, 종이 재질에 관심을 갖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책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어쩌면 삽화나 그림보다도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건 막연한 상상만은 아니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넓은 의미의 텍스트라 할 때 텍스트의 의미전달의 성패는 텍스트의 내용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에만 달려 있는게 아니다. 똑같은 영화도 극장에서 볼 때 - 이때 극장의 수준도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친다 - 와 디브이디방에서 볼 때는 다르다. 극장과 디브이디방은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다르다. 극장에서 돌아가는 필름과 디브이디는 벌써 저장 장치부터가 다르다. 이런 모든 것들이 텍스트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 개입되는 요소들이다.

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생겨나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다가 3백년이나 지나서야, 즉 이른바 '위기의 3세기'가 되어서야 로마의 대중을 사로잡고 드디어 국교의 자리에 올라선 기독교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신앙심이 돈독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이 그러했기 때문이라는 확신을 내놓을테지만 우리는 뭔가 다른 대답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독교는 말씀이라는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잘 전달되는 것과 그것이 훌륭하다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무관하다.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그걸 널리 전파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실천적 조직이다. 이 조직원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담은 책 -- 두루마리가 아니다 -- 을 가지고 선교 여행을 떠난다. 이쯤 되어야 비로소 텍스트가 전파되기 시작한다. 거기에 덧붙여 기독교 공동체는 의사 소통과 기억과정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즉 상징체계가 물질적 차원으로 변환되는 방식이 이전의 어떤 종교와도 달랐던 것이며, 이것이 텍스트 전달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말씀이 훌륭하고 하느님의 뜻이 그러했다는 것은 상징체계의 차원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텍스트 전달에 개입되는 문화적, 지적 테크놀러지와 그것의 활용방안을 무시한 우스개일 뿐이다.

현대는 다양한 매체가 포진해 있는 공간이다. 텍스트 내용에 따라 매체를 고를 수 있다. 각각의 매체마다 또다른 세부 선택 사항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매체들은 모두 다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된 존재인 일종의 권위를 가진 메시지 전달자, 즉 매개자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 역시 매체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림이 들어가느냐 마느냐는 더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느 매체에 그것이 실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어떻게 어떤 포맷으로 누구에 의해 전달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면 플로베르는 오늘날에는 무엇을 챙겼을까?강유원/회사원·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