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한 그루의 나무다. 면면히 이어온 뿌리가 있고, 중심이 되는 줄기가 있고, 또 갈래갈래 가지를 치고, 꽃피우고 열매 맺고, 그리고 또 씨앗들을 떠나보낸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듯이 자식 많은 집에 근심걱정 끊일 날이 없는 것이 인생이다. 변덕 심한 봄바람에 새잎을 흩날리며 흔들리는 가지 많은 나무- 집을 그리자니 부모형제, 일가친척들의 지난한 인생역정들이 그려놓은 가지와 잎새 수 만큼 머릿속에 스치운다. 그리고 두 그루의 쓰러진 나무 이야기- <김약국의 딸들>(박경리 원작, 유현목 감독, 1963년작)과 <휘청거리는 오후>(박완서 원작, 주영중 감독, 1978년작)를 생각한다.
<김약국의 딸들>의 김봉제씨에게는 다섯딸이 있고, <휘청거리는 오후>의 허성씨에게는 세딸이 있다. 이 여덟명의 딸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 가지들이지만 그들이 받아내는 세파의 바람은 한결같이 모질고 험하다. 다섯딸의 순탄치 못한 삶 속에 김 약국이 몰락하고, 가난한 집안의 내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세딸의 불행한 삶에 아비 허성씨의 인생 말년이 휘청거린다. 제 스스로 곧게 자라지 못한 가지는 병들어 썩어버리기도 하고, 곧게 자라나려고 애썼지만 너무 심한 바람에 가지는 부러지기도 한다. 가지가 너무 심하게 다치면 나무는 결국 죽어버린다. 15년의 시차를 둔 두 집안의 몰락의 스토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40년, 25년의 시차를 둔 오늘이 다르지 않다. 우리의 젊은 나뭇가지들은 더욱 무성해졌으나, 무성해진 만큼 비좁고 여리고 나약하다. 세파의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닥치니 미숙한 가지들이 방황하고 다치고 절망하고 있다. 꽃 하나 피워내고 열매 한번 맺기가 만만치 않은 계절이다.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무는 아프게 몸살을 앓고 있다.
집은 물보다 진한 피가 흐르는 나무이다. 피는 사랑이다. 그래서 바람 부는 오늘, 우리는 또 허리가 아프게 휘청거리고 있다. 나무가 휘청거리고, 숲이 휘청거리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새 여름하나니, 뿌리여 버티어 주소서.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