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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한 불완전한 영화, <붉은 사막>

Deserto Rosso 1964년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출연 모니카 비티

EBS 3월27일(토) 밤 11시

1960년대까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는 비교적 단순하게 읽혔다. 현대인의 고독감과 소외, 그리고 불안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 것이다. 이후의 비평가들, 피터 브루넷 등은 이러한 견해에서 일정 정도 거리를 둔다. 안토니오니 영화에서 시각적이고 문화적인 은유, 그리고 산업적 맥락을 함께 재고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안토니오니의 <정사>(1960)나 <밤>(1961), 그리고 <일식>(1962) 등은 현대적 텍스트, 다시 말해 영화 스타일이나 인물의 심리적 형상을 들여다볼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걸작들이다. <붉은 사막> 역시 그렇다. 감독이 만든 ‘삼부작’에 이어지는 <붉은 사막>은 어느 비평가의 말을 빌리자면 안토니오니 영화 중에서 “최고의 영화이자 가장 불완전한 영화”라는 이중적 잣대가 적용된다.

이탈리아의 공업도시에서 공장 기사인 남편, 아들과 셋이 살아가는 쥴리아나는 자동차 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다 퇴원한다.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정신이 불안정해져 노이로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가족의 존재도 그녀의 불안을 완화시켜주지는 못한다. 노이로제로 인한 그녀의 괴팍한 성격은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행동한다. 건축가인 코라도 젤러는 이런 쥴리아나를 이해하면서, 그녀의 문제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른 안토니오니 영화에 비해 <붉은 사막>의 여주인공 쥴리아나는 심리적으로 가장 불안정하다. 그리고 히스테릭하다고 여겨진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또한 정서불안 상태에 느슨하게 빠져 있다. 영화는 색채의 사용, 즉 원색의 다양한 사용을 통해 쥴리아나 내면의 흔들림을 대신 전하고 있다. 이 과정은 쥴리아나의 판타지 장면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요컨대 영화에서 색채는 현실의 창이자 도주의 은유다.

좀더 단순화해보면, <붉은 사막>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안토니오니의 영화는 특정 상황에 반응하는 남녀의 차이에 관한 작품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반응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쥴리아나는 어느 남자로부터 과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쥴리아나는 말할 것이 없다. 혹은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쥴리아나가 들려주는 대사라고는 “난 왜 항상 다른 이들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라는 것 정도다. 난해하기로, 때론 지루하기로 소문난 안토니오니의 영화 중에서 <붉은 사막>은 유독 어려운 영화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영화의 시각 모티브, 작품에 스며 있는 정교한 우화(寓話)의 세계, 그리고 색채의 의미 등을 눈여겨본다면 <붉은 사막>은 어느 다른 영화에서 만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전해줄 것임에 분명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