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나빴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와 수용을 보여줄 나이에도 그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만약 김기덕의 작품으로부터 매번 눈을 돌렸다면, 현실의 위악을 잊거나 부정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보라. 그의 작품은 소외된 도시인, 그러니까 우리 대부분의 엘레지이며, 동시에 육체의 악마와 인간이란 얼굴의 야만이 만나는 판타지였다. 그런 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선 깨달음과 윤회, 삶과 죽음의 문제, 용서와 인연을 이야기한다. 그의 그간 작품의 감동이 엇박자였다면, <봄 여름…>은 딱 어울리는 순간에 감동을 준다. 별게 다 신기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의 그간 작품과 달라 보인다.
그러나 이 남자, 지금도 나쁘다. 홍상수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본능적인 감각으로 영화를 만드는 김기덕은, 그런데 홍상수와 달리 모던하기보단 야만적이다. 아무리 그의 카메라가 산사를 비춘다고 하더라도, <봄 여름…>에서 형이상학적인 선문답 같은 걸 찾긴 힘들다. 그 발은 현실을 딛고 있으며, 욕망과 집착의 흔적도 여전하다. 김기덕은 우리의 몸으로부터 가장 멀리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국 그의 손은 우리의 삶을 향하고 있다. 누군가의 고통을 육체적으로 직접 느끼게 만들 수 있는 자는 김기덕뿐인 것 같다.
영화의 제목을 이용한 단순한 메뉴 구성이 신선한 느낌을 주는 DVD다. 감독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지 않아서(기존 음성해설 작업 때도 작품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던 그다) 작품에 대한 궁금증은 알아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영상은 화면 떨림이 잦은 게 흠이다. DVD 사운드는 좋은 편이나, 원천적으로 후시녹음의 흔적이 많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