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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이라굽쇼?

한다면 하는 놈들이 기어코 일을 쳤다. 반민특위가 친일잔당들에 의해 습격을 받고 와해되었을 때는 이만큼 분했겠지? 12·12을 망쳤을 때도, 5·17을 당했을 때도 이렇게 참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유신의 어두운 터널 끝에 살짝 비친 하나의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하던 민주주의에 대한 꿈이 짓밟힌 것과 더딘 걸음을 하는 첫돌을 갓 지낸 늦둥이가 내 눈앞에서 못된 놈들의 칼을 맞은 것이 어찌 같을 수 있으랴.

놈들은 엄청난 거사에 성공했다고 피묻은 칼을 들고 희희낙락이다. 올해가 갑신년이라며 갑신정변이라 불러달랜다. 아아, 우리 역사가 어째서 이 지경이 되어 민주주의를 짓밟은 폭도들이 저리 함부로 이야기를 하는가? 근대화의 꿈과 좌절이 고스란히 담긴 갑신정변과 이 폭거를 같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역사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모독이다. 아, 그런데 갑신정변과 이번 일이 비슷한 점이 딱 하나 있다. 갑신정변이 주체적 역량의 부족과 외세의 개입 때문에 ‘3일 천하’로 끝났다면, 3월12일의 폭거는 조금 명이 길지만 ‘33일 천하’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4월15일, 우리는 그날을 받아놓고 있다. 유신과 5공의 자식들이 탄핵이란 조항에 기대어 민주주의를 교살하는데 그 잘난 헌법에는 저런 것들을 소환하는 국민소환제도도 들어 있지 않다. 국민소환제도 없는데, 4월15일이라는 날을 받아놓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머리를 쥐어뜯으며 눈물을 흘리고만 있을 것이다. 어찌 가만히 눈물만 흘렸으랴? 끝없는 절망의 나락에 빠져 우리는 어쩌면 안중근과 이봉창의 후예가 되고, 윤봉길과 나석주의 제자가 되고, 아니면 멀리 유학을 가서 빈 라덴에게 제대로 배워오거나, 하다 못해 의사당에 똥물을 뿌린 김두한이라도 본받아보려고 재래식 화장실을 기웃거려야 했을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워낙 격동의 역사이다보니 별로 오래 살지 않았어도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가당치 않게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군사반란의 수괴들을 쫓아내려고 거리에서 최루가스를 마시더니, 이제는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그들의 부하로부터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서 촛불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둠 속에서 촛불을 들고 찾아야 할 사람들은 모진 세월 속에서 이리 차이고 저리 채이다가 멸종 위기에 빠진 보수세력의 양심이다. 친일파의 발호에, 민간인 학살의 미친 시간 속에서, 전쟁의 광기 속에, 군사정권의 서슬 푸른 독재 아래서 우리가 매맞을 때 그들이 외면하고 침묵했다고 섭섭해하던 마음일랑 다 던져버리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쿠데타! 수구반동은 해도, 파시스트는 해도, 진보주의자는 혹시 해도 진짜 보수주의자나 자유주의자라면 절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몸을 던져 막아야 하는 것이 쿠데타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이 쿠데타를 오랜 기간 잃었던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지난 수십년간 길들여진 대로 수구반동이 가리키는 길로 따라갈 것인가? 개혁세력과, 수구와 ! 결별한 양심적인 보수세력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두 기둥으로 우뚝 서는 날이 4월15일이다.

헌법을 짓밟은 군사반란의 수괴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유신과 5공의 장학생들이 갑자기 준법정신이 하늘을 찌르게 높아졌나보다. 금 밟으면 무조건 죽는 거라며 방방 뜨는 것을 보니 어렸을 때 오징어 놀이는 엄청 많이 한 모양이다. 오징어의 강렬한 추억이 잘못 박혀 아무나 보고 금 밟았다며 진짜로 죽이려고 달려든다. 100보를 양보하여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의 사유가 탄핵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어휴, 국회의원 나으리들의 쌓이고 쌓인 죄는 어찌 다 씻을까?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