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TV를 틀어놓고 화면을 보지 않은 채 흘러나오는 소리만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화려한 스타군을 등장인물로 가진 드라마의 경우에 인물들의 대사를 귀로만 수용하다 보면 그 단순성과 유아스러움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가 과연 텔레비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사하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 어떤 스타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안이한 시청 상태로 들어간다. 발음이 분명치 않고 대사조차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에라도 그 탤런트가 몇번 얼굴이 드러나 내게 눈으로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그 청각적인 껄끄러움을 참아내며 그가 우리에게 편안한 연기를 선사해줄 날을 기다리는 인내심을 키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는 결코 ‘멀티’미디어의 시대가 아니다. 미디어 세계의 왕처럼 군림하는 텔레비전은 ‘시각’이라는 감각을 빼고 나면 죽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시각편식증에 걸려버린 시청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TV 광고 화면들의 한컷 한컷을 보라. 내게 그것은 놀라운 시각중심 문화의 결정적 성과물들이다. 인간에게 마치 눈만이 확대되어 달려 있는 듯한 기형을 만들어 세대를 물린다 해도 우리는 시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멀티’라는 용어가 무색하게도 청각, 촉각, 후각, 미각들은 시각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다 어느 고즈넉한 늦은 밤, TV에서 누군가 책을 펴고 조용히 읽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낭독으로 느끼는 제3의 감각이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소리를 내어 스스로 몸을 통하여 느끼는 것이다. 시각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틈새가 없다. 왜냐하면 보는 것이 듣는 것을 압도하여 아무런 공간을 만들어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공간과 여유가 바로 사람들에게 ‘울림’과 ‘느낌’을 소생하게 해주는 산실이다.
<낭독의 발견>에서 ‘잘 읽는’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말에는 리듬과 절주가 있었다. 말과, 시와 음악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그 시간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보여줌’이 아니라 ‘들려줌’의 미학이 다양한 진동을 선사하면서 빡빡하고 강요된 감정의 획일 속에서 벗어나게 해줄 때 우리는 하나에만 지배당하지 않는 다양한 즐거움을 알게 된다. 성시경과 송선미는 함께 김종완 시인의 <그의 시 & 그녀의 시>를 조용한 음악 속에서 낭독해주었다. 그때 난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그 시가 말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시각으로 보여주었으면 간단하고 유치하게 처리되었을 장면들이 시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여운을 남겨주는가를 말해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남자)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아침에 그녀는 꼭 커피를 마신다. 밀크가 아닌 블랙으로 2잔/… 그리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여자)그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그는 아침에 내가 뽑는 커피 한잔이 그의 것인지를 모른다…∥ (남자)그녀는 하기 싫은 부탁을 받을 때는 그냥 웃는다/ 그리고, 내색을 안 하는 그녀이지만 기분이 좋을 때는/ 팔을 톡톡 두번 건드리며 이야기를 건넨다…∥ (여자)그는… 나의 침묵에 담긴 긍정의 의미를 모른다/ 난 내가 기분이 좋을 때 그의 손을 잡고/ 얼마나 이야기하고 싶은지 그는 모른다…∥ (남자)…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여자)… 그리고, 그는/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그녀가 타는 커피 두잔 중에 한잔이 그의 것임을 모르며 그녀가 싫을 때와 좋을 때의 표현이 그 때문에 연유하는 것임을 그는 모른다. 그래서 결국은 그녀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그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 그녀를 관심있게 바라보고 있는 그는 진정 그녀의 사랑을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같은 근원에서 움직이는 데도 그녀와 그는 얼마나 다르고 보고, 다르게 느끼며 다르게 결론짓고 있는가.
나는 진정한 문화의 힘은 서로 다른 개인에게 건강하게 자기만의 울림을 가질 수 있게 하고 그것들이 조화롭게 공명하도록 해줄 수 있을 때 나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조금은 천천히, 조금은 깊숙하게, 조금은 낮게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의 감각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자. 빨리 좋은 것을 보여달라고 하기 전에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그래서 차분하게, 다르지만 또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할 수 있도록….
素霞(소하)/ 고전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