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기 위해선 우선 책상을 정리해야 한다. 또 정리가 끝난 책상 위를 적신 헝겊으로 깨끗이 닦아주어야 한다. 왜?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뭐랄까 <편지>란 것은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산천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1급수의 반짝이는 수면 위에 여러 장의 편지지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펜을 든다. 유성보다는, 연필이 좋다. 컴퓨터의 도큐먼트와는 달리, 편지에서는 애당초 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지우고 고쳐도, 그 흔적이 종이의 지층 속에 어떤 식으로든 남게 마련이다(악력이 센 사람이라면, 그 속에 중생대 이구아노돈 정도의 화석을 남길 수도 있다). 그게 싫다면, 당신은 처음부터 모든 문장을 새로 써야만 한다. 결국 누구나, 심사, 숙고해야만 한다. 그러니 연필이 좋고, 또 연필은 2B 정도가 적당하다. 4H보다는 확실히 부드럽고, 4B에 비해선 뭐랄까 섬세하다. 이제 당신은 연필을 깎아야 한다. 그리고 육각의 모서리를 다듬으면서, 좋든 싫든 깊고도 그윽한 향나무의 향을 맡아야 한다. 인류에겐 향나무로 연필을 만드는 오랜 습관이 있고, 인류는 미처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자, 준비를 마쳤다면 이제 편지를 써보도록 하자. 우선 당신은 편지를 받을 대상을 물색해야 한다. 대개 그것은 산속에서 가장 멋진 향나무를 고르는 일만큼이나 힘든 일이지만(당신이 어떤 나무를 고르는가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어쨌거나 각설하고 이제 편지를 써나가도록 하자. 물론 관건은 심사, 숙고에 달려 있다. 당신은 적당한 인사말을 고르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을 소비해야 할 것이고, 여러 장의 구긴 종이에, 또 수북한 지우개 똥을 쓸어담아야 할 것이다. 결국 당신은 한장의 편지를 완성하는 데 성공한다, 할 것이다. 어쩌면 밤을 샌 작업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당신은,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편지를 쓴다는 건- 어차피 마음속에 키워온 한 마리의 산천어를, 방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질관리를 해온 1급수의 물이, 댐의 균열을 타고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다. 물론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이고, 또 당신은 쉽고 덤덤하게 한통의 편지를 완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없다. 세상엔 덤덤한 표정의 산천어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까. 자, 이제 풀과 봉투를 준비하자. 그리고 봉투를 봉했다면 창을 열어 기후를 확인하자. 편지를 부치기 위해, 이제 당신은 외출을 해야만 한다. 두근거려도 좋고, 덤덤해도 좋다.
어쨌거나 당신은 우체국까지 걸어야 할 것이다. 실은 이 말을 숨기고 있었는데, 이제 <우체통>이란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조금 걸어야 한다. 걷다 보면, 봄볕이 내리는 큰길의 끝에 우체국은 있게 마련이고, 당신에겐 그 문을 열고 들어설 권리가 있다. 대개 우체국은 한가하고, 이제 당신은 당신이 완성한 한통의 편지와 작별을 해야 한다. 당신은 우표를 사고, 우표를 붙인다. 그리고 편지를 직원에게 건네고, 쿵, 소인이 찍히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한다. 이제 편지는 당신의 손을 떠났다. 벗어났다. 알고 보면, 세상은 거대한 우체통이자, 강이다. 그 흐름에,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맡겨야 한다. 방생한다. 대개 그 순간, 우체국 문 밖의 하늘은 좀더 공허해진다.
그것이 <편지>다. 뭐야, 이메일을 쓰면 되잖아? 란 말에는, 그래서 더욱 공감할 수 없다. 뭐랄까, 그건 너구리의 멸종을 염려하는데 “괜찮아, 우리에겐 오리너구리가 있으니까”란 말을 듣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로선 그야말로 입이 튀어나올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만에 찬 너구리처럼 묵묵히 한통의 편지를 써나가다 보면, 세상이, 왜 이토록 삭막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우체부들이 배달하는 건 고지서와 영수증과, 카드요금의 청구서가 고작이고, 우편함 속에는 명세서와 지로용지와, 잘해봐야 잡지가 전부이다. 그래서다. 오래전에, 세상은 편지를 쓰는 인간들로 가득했었다. 또 우체부들이, 그 편지를 각자의 우편함과 사서함 속으로 나르고 또 날랐다. 어쩌면 그것은 1급수의 수질을 내내 유지하고, 그 속에서 기른 산천어를 서로에게 배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탁류(濁流)는 각자의 마음에서 흘러넘친 것이었다. 경제는 어렵고, 정치는 개판이고, 전망은 그래서 더더욱 어두운데- 아마도 그래서, 나는 갑자기 <편지>란 걸 떠올리게 된 건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편지를 쓰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말 그대로의 <편지>를 말이다. 오 놀라워, 편지를 쓰는 내내 나는 중얼거린다. 놀랍게도, 한통의 편지를 쓰는 일이 세상에 대적하는 일이었다. 입이 쑥 들어간 너구리처럼, 신선한 기분이다. 박민규/ 무규칙이종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