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곳에 살게 되었을까. 거대한 벌통 같은 철근 콘크리트 상자곽 속에서, 그야말로 꿀벌들처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조선개국공신 정도전은 후일 최초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될 동네의 이름을 잠실(누에 잠蠶 집실室)이라고 이름했는데 그 선견지명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는 정말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아름다운 갈대 숲을 지나’ 한반도 땅끝까지 어디에나 포진하고 있는 아파트. 서양에서의 아파트는 단독주택을 마련할 가망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 부류들을 위한 주거 형태이지만,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달동네에서 연탄가스 마시면 동치미 국물이나 마시고 목숨 부지하던 시절에 현대적 라이프 스타일로 각인되면서 희망과 성공과 행복과 안정의 상징이 되었다.
아파트는 높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 이 상승의 쾌감. 18평에서 25평으로, 38평에서 45평으로, 성적이 올라가고, 직위가 올라가고, 연봉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며 신분상승을 위해서 아파트 평수를 높여가며 인생을 업그레이드한다. 과연 아파트의 미학은 높이 오른다는 데 있다. 역사 속의 우아한 고성들은 이제 모두 무너져가고 있고, 그 성에 살던 귀족들도 사라졌고, 계급도, 절대권력도 모두 무너져내리는 대신에 이제는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지구라트(ziggurat)의 부흥이다.
그리고 또 아파트는 평등하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지만, 그 집이나 이 집이나 모두 똑같다. 같은 브랜드의 아파트에 같은 동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경제적 수준이 동일하다는 동질감을 가지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가질 수 있다. 아파트로의 입성은 일종의 공인된 계급에의 편입을 상징한다. 약진하는 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아파트 등기부등본은 가장 명료한 신분증명서이다. 입장과 위치와 계급에 대한 명료한 증명. 그것은 ‘생활의 안심’이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치르고 구입한 아파트는 ‘이제는 나도 남들만큼 산다’라는 안심을 선사한다. 한국에서 아파트가 턱없이 비싼 이유는 다름 아닌 바로 저 ‘안심’의 부가가치 때문이다. 아파트는 공동구매하는 성(城)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곳에 살게 되었을까. 이런 곳에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런 곳에서 살아야 안심할 수 있는 세뇌된 의식구조가 더 무섭다. 오늘도 아파트는 계속 건설되고, 남자는 꿀벌처럼, 여자는 누에처럼 살고 있다.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예술가 www.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