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진화한다. 비와 바람을 막아주고 먹고 자고 생활하는 ‘장소’에서 시작되어서 점차 다양한 기능을 갖춘 ‘장치’로 발전하고 있다. 단순한 광물과 목재와 철물들로 만들어진 무기질의 건축물에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집은 혈관이 생기고, 심장을 갖추고, 체온을 지니고 호흡하는 생명력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생활을 보호하는 외부적 기능에서, 인간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돕는 신체확장의 의미로까지 진화해왔다. 집은 생활 속에 자리한 가장 거대한 기계장치이다. 전기는 생명이다. 전기가 단순한 기계장치를 작동하는 차원에서 정보를 제어하는 수준으로 발전하면, 굴삭기 같은 단순한 기계가 지능을 가진 지능적 로봇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의 우리의 집은 홈 네트워크(Home Network) 시대의 개막을 부르짖으며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각 방들과 부엌과 거실 등 분할된 개별적 공간에 분리되어 있는 가족간의 정보를 교환할 수 있으며, 집 밖에서도 각종 원격조종장치를 이용해 집안의 세탁기와 전기밥통과 냉장고와 가스밸브를 통제할 수 있다. 초고속 통신망은 이 작은 집을 전세계와 연결해놓고 있다. 플러그를 꽂을 콘센트가 없는 인간의 신체로는 불가능했을 커넥션을 집이라는 거대한 로봇은 실현하고 있다. 이 훌륭한 거대 로봇은 전통적인 주택의 안락함 이상의 편리함을 제공해준다. 주택자동관리 시스템은 집안의 각종 카메라 인식장치로 침입자를 감시하고, 필요에 따라 스스로 경찰을 부르고, 실내 온도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귀가하는 집주인이 열쇠를 찾느라 허둥댈 필요없이 동공확인 시스템으로 주인을 알아보고 문을 열어주며, 집에 들어서서 외투를 벗으며 “거실 조명 켜고, 이메일 확인하고, 형님 집에 전화연결하고, 커튼 내리고, 내일 아침 7시에 음악 알람 준비하도록 해”라고 말만 하면 된다. 집은 음성인식장치로 말도 알아듣는다. 이른바 인텔리전트 주택이다. 원시적 형태의 집이 보호벽의 단순한 기능이라면, 전기문명 시대의 집은 신체의 물리적 확장을 의미하는 기계적 집이었다. 그 다음 단계는 전기라는 생명력에 정보라는 의식과 인간과 네트워크를 갖춘 유기적 총체로서의 존재가 됨으로써 인간의 몸과 의식이 확장된 새로운 생명체가 된다. 홈 네트워크는 더욱 긴밀하고 광범위하게 진화해서 기어이는 전세계가 하나의 생명체의 신경계처럼 연결되고 인간은 그 사이를 흐르는 피톨처럼 살아갈 것이다. 그때는 집이 죽으면 사람도 죽고, 홈 네트워크를 정복하면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다. 홈 네트워크는 매트릭스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예술가 www.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