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dens of Stone 1987년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제임스 칸
EBS 2월21일(토) 밤 10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1979)은 전쟁영화의 걸작으로 남아 있다.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광기로 얼룩지는 인물들을 이 영화만큼 적확하게 묘사한 경우는 흔치 않다. <병사의 낙원> 역시 코폴라 감독작이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반전의 테마가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두 영화가 지니는 무게는 예상외로 너무나 상이하다. <병사의 낙원>은 ‘수정주의’ 전쟁영화라는 평가가 어울릴 만큼 이전 코폴라 영화와는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점에서 놀랍다.
영화는 ‘돌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전에도 참전한 바 있는 백전노장의 노련한 군인 크렐 상사는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린 베트남전에 회의를 품고 있다. 어느 날 크렐의 부대에 재키 윌로우 일병이 들어오고, 크렐은 그가 한국전 동지였던 친구의 아들임을 알아본다. 재키는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미국의 애국청년. 재키를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크렐은 그의 마음을 바꿔보려고 설득하지만 재키의 마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병사의 낙원>은 원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지옥의 묵시록>에 이은 코폴라 감독의 베트남전 영화이자 좀더 소품에 가깝다. 그런데 이 영화를 전형적인 전쟁영화, 혹은 전우애에 관한 호모에로틱한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흔히 베트남전을 다룬 전쟁영화의 수작으로 우리는 <지옥의 묵시록>이나 <플래툰>을 떠올린다. 이 영화들은 전장에서 벌어지는 도덕성의 파괴, 혹은 적과 아군의 구분을 뛰어넘은 심리적 내상의 기록에 다름 아니었다. 반면, <병사의 낙원>은 가족드라마에 가깝다. 영화에서 제임스 칸이 연기하는 크렐 상사는 재키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그는 재키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합하도록 도와주고 또 그것을 핑계 삼아 전쟁에서 멀어질 것을 충고한다. 그럼에도 재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총탄이 쏟아지는 현장으로 발길을 향한다. 영화는 이렇듯 군인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가족애와 유사한 관계에 집중하고 있으며 애틋한 로맨스까지 따로 곁들인다. 따라서 전쟁의 광기와 참상은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어느 비평가가 지적했듯 영화의 아쉬운 부분은 <병사의 낙원>이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는 것”에 그치는 점이다. 젊은 군인들의 이유없는 죽음,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멀찌감치서 관망적으로 스케치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아쉬움을 인정하더라도, <병사의 낙원>은 코폴라 감독의 영화세계가 기복이 많음을 다시 느끼게 하지만 <지옥의 묵시록>의 팬이라면 보고픈 유혹을 느낄 법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