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아이가 나를 방으로 불러들이더니 그날은 이상한 교육을 받았다고 하면서 슬그머니 생리대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선생님께서는 그 물건을 하나씩 나누어주시고 겉봉을 잘 뜯어서 팬티에 어떻게 붙이는지를 설명해주셨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점을 역설했는데 패드의 끈끈한 부분은 엉덩이쪽이 아니라 팬티 쪽으로 향하게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물건이 엉덩이에 달라붙어 낭패를 볼 것이라고 했다.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여성의 몸의 생리에 대하여 아무런 체험이 없는 그 아이가 성교육 시간에 끈끈한 생리대의 사용법을 재미있게만 들었을 생각이 들어 웃음이 절로 터졌던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고 뭉클한 핏덩이를 낳아 언제쯤이나 제구실을 하는 온전한 인간으로 키울까 걱정을 하던 때에서 어느새 아이가 제 몸을 알아야 하는 숙성한 나이가 되어가는구나 하는 뿌듯함에 가슴이 저려와서 참을 수 없었던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반올림#>의 옥림(고아라)이는 그때의 나와 내 딸을 상기시켜주었다. 중학교 2학년의 옥림이가 “왜 나만 안 하는 거야”라고 고민하는 모습은 어서 어른이 되고 싶은 안타까운 성장통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처음으로 월경을 하던 날이 기억난다. 밤새 배를 움켜잡고 끙끙댔는데 새벽에 보니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도 분명 그 나이가 되어서까지 학교에서 성교육이라는 것을 받지 않은 것도 아니고 생리를 시작한 친구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건만 내게 닥친 일생일대의 사건은 나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옥림이처럼 기다리던 일도 아니었기에 왜 그래야 하는지를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 아픔과 출혈을 겪어야만 여성이 될 수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내 몸에서 구현되는 순간에 솔직히 난 그것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이해를 결여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거대한 파도처럼 덮쳐왔다.
그런데 옥림이의 식구들이 레스토랑에 모여 옥림이에게 장미꽃과 케이크를 선사하며 초경 축하파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생리 축하합니다. 생리 축하합니다….” 혼자 밤새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아침에 엄마가 챙겨준 패드를 팬티에 끼고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몸짓으로 등교하던 나의 모습은 그곳에 없고 개방적이고 당당하게 한 여자아이의 제2의 탄생을 축하하는 즐거운 파티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지금의 나나 내 딸에게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신체의 변화가 신호가 되어서 몸과 마음이 모두 온전한 한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축하해주어야 마땅한 일을 나의 세대에서는 어색한 통과절차처럼 쉬쉬하고 넘겼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옥림이는 자꾸 성장하고 있다. 반음의 단계에서 온음으로 올라갈 것이다. “왜 나만 안 하냐”고 묻다가 그 질문이 해소되면 자신은 진정 “무엇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느냐”고 물을 것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별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 끊임없이 헤맬 것이다. 이제는 제 방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잠그고 문을 두드려야만 열어주는 딸아이가 낯설어지는데 아이가 정작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꿈을 키워가는지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고 언제나 그저 공부하라는 말로 책상 앞에 끌어다 앉히려는 나를 자꾸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가 옥림이처럼 성장통을 겪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엄마로서의 내 인생도 함께 반음에서 온음으로 올라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반성한다.
옥림이는 사춘기의 나를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지금을 살고 있는 내 딸아이가 나와는 얼마나 다른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가운데 내 것과 공유되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 다름을 증명한다. 심지어 우리가 얼마나 다른가를 지금의 나는 감도 잡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만 바라는 것은 아이에게 내 못 다한 꿈의 1%라도 실현하도록 이입시키지 말 것이며 내가 옳다고 판단한 것을 강제로 주입시키지 않으면서도 여유롭고 편안하게 아이가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함께 인생을 살아가면서 의미를 꼭꼭 씹어 서로에게서 해답을 찾아가는 크고 작은 실마리들을 발견하는 동반자로 변해가기를 바란다. 함께 반음에서 온음으로 올라가는 길은 결국 소통을 향한 작은 노력들이 일상을 메우는 길밖에는 없다고 믿기에….
素霞(소하)/ 고전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