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그런 집을 ‘양옥집’이리고 불렀다. 흔해빠진 슬레이트 지붕이나, 기와지붕보다는 훨씬 예리한 각도를 가진 초록색 뾰족지붕에, 2층에는 테라스가 있고, 집 한쪽에는 담쟁이 덩굴도 있고, 높은 돌담에 장미넝쿨이 멋지게 흐드러진 ‘일종의 서양식 저택’을 우리는 ‘양옥집’이라고 불렀다. 내 나이 열살이나 되었을 즈음의 1974년에 나는, 덕지덕지 판잣집들이 즐비한 청계천 뚝길을 지나 지금의 마장동 적십자사 앞을 지나는 등굣길에, 길 건너편에 밝고 예쁘고 동화 같은 뾰족지붕을 가진 양옥집 한채를 지나 다녔다. 길 하나를 건너 그 양옥집 근처에는 어쩐지 햇빛이 더 많이 내려 쬐이는 듯했고, 바람도 훨씬 잔잔한 듯했고, 무엇보다 눈부시게 보였던 것은 그 길가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의 샛노란 사립학교 교복이었다. 당시의 마장동 따위에 경유하는 노란색 스쿨버스란 마치 매일아침 미국에서 출발해서 양옥집에 사는 아이들만 태워가지고는 부랴부랴 다시 미국의 꿈과 환상의 학교로 데려가는 우주선처럼 보여졌다. 몇푼 안 되는 육성회비를 며칠 만에 겨우 받아가지고 등교하던 날에도 그 양옥집 앞을 지날 때는 장미내음이 물씬 풍겼고, 노란 교복은 스쿨버스가 늦다고 제 성질껏 투정을 부리고 있었고, 분명 우리집을 나설 때 우중충했던 날씨는 어느새 교향악이 울려퍼지듯 화창해져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내 유년의 기억 속에서 양옥집이란 완벽한 풍요와 행복의 대사관으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저 넓은 정원 뒤를 잇는 장미 꽃밭/ 높고 긴 벽돌 담이 저택을 두르고/ 앞문에는 대리석과 금빛 찬란도 하지만/ 거대함과 위대함을 자랑하는 그 집의/ 이층방 한구석엔 홀로 앉은 소녀/ 아-아- 슬픈 옥이여 아-아- 슬픈 옥이여”
“백색의 표정없는 둥근 얼굴 위의/ 빛 잃은 눈동자는 햐얀 벽을 보며/ 십칠년의 지난 인생 추억없이 넘긴 채/명예와 재산 위해 사는 부모님 아래/아무 말도 없이 아무 반항도 없이/ 아-아- 슬픈 옥이여 아-아- 슬픈 옥이여”(후략) - 1974년 한대수 작사·작곡 <옥의 슬픔>
10년이 조금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 나는 한대수의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기분. 노래가사에 묘사된 집은 분명 내가 동경하던 ‘양옥집’을 그린 것은 분명한데, 2층방 한구석에 슬픔이 있다니.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양옥집은 슬픔과는 거리가 멀어. 양옥집에도 슬픔과 고통이 있다면 행복은 어디 있다고. 그래선 안 된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그렇게 거대하고 위대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부잣집에까지 슬픔이 깃들 리가 없다고…. 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데 사실은 그랬는지, 이제는 해밝던 양옥집을 더이상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내 유년의 동경도 점점 허물어져 간다.
글·그림 김형태/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