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등록 기업 중 시가총액과 수익률 모두 손꼽히는 기업인 게임 제작사 ‘NC 소프트’가 전세계 게임이 모이는 게임박람회 ‘E3’에서 깜짝발표를 했다. 제3자 인수방식을 통해 신주를 발행하는데, 이 신주의 일정량을 특정 사람에게 매각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전혀 별스러울 게 없는 얘기지만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서 화제가 되었다. 바로 리처드 게리엇, ‘로드 브리티시’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울티마>의 아버지다.
뭔가 이면계약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발표내용에 의하면, 리처드 게리엇이 새로 만든 회사와 그 회사가 보유한 모든 지적재산권을 NC가 전부 인수하고 현재 개발중인 온라인게임도 사들인다고 한다. 대신 리처드 게리엇에겐 NC 소프트의 주식을 할인해서 파는데, 그 결과 리처드 게리엇은 NC 소프트 미국지사 책임자보다도 더 큰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가 된다고 한다.
리처드 게리엇은 피터 몰리뉴, 시드 마이어와 함께 3대 제작자로 꼽히는 세계적인 거물이다. 직접 세운 오리진이 EA에 매각된 뒤 맘대로 원하는 걸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뛰쳐나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가 한국의 NC 소프트에 영입된다는 보도는 사실 놀라움을 넘어서 충격에 이를 정도다.
이 계약은 양자에게 모두 나쁠 게 없는 이야기다. NC는 <리니지>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언제까지나 국내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다. <리니지>가 미국과 일본에서 극히 부정적인 반응을 받은 상황에서, 리처드 게리엇의 영입은 세계시장 진출이 확실한 빅카드다. 리처드 게리엇도 마찬가지다. 이름값에 걸맞은 대작을 만들려면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하다. NC와 리스크를 분산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게다가 두고봐야 아는 일이지만 NC와 리처드 게리엇의 무게 차이를 생각하면 EA처럼 게임 제작에 심한 간섭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게이머들 반응이 영 냉랭하다. <리니지>를 들어본 적도 없는 외국 게이머야 그럴 만하지만 국내 게이머들도 리처드 게리엇이 미쳤냐며 난리다. 그간 <리니지> 서비스에 대한 불만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비난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리처드 게리엇이 만든 <울티마 온라인>과 NC의 <리니지>는 둘다 머그게임이다. 하지만 거의 정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추구하는 게임성이 완전히 다르다. <울티마 온라인>은 이른바 ‘정통 RPG’의 확장이다. 가장 중요한 건 현실이 아닌 또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반면 <리니지>는 전형적인 ‘핵 앤 슬래시’게임이다. 어떤 치장도 없이 오직 적과 나의 끊임없는 투쟁만 추구한다. 얼마나 많은 적을 얼마나 통쾌하게 해치웠는가, 위험을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피해나가는가가 중요하다. 게임이 주는 즐거움이 전혀 다르고, 게임을 통해 게이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울티마 온라인>의 세계에서 로드 브리티시로 불리며 보관을 쓰고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 리처드 게리엇은 발빠르게도 기자회견에서 <리니지>는 <울티마 온라인>보다 훌륭한 게임이라고 얘기했다. 발끈한 <울티마> 게이머들도 리처드 게리엇은 이미 <울티마> 8편부터 손을 뗀 것이나 다름없다고 받아치고 있다. 돈에는 얼굴이 없다. 지금은 혁명이든 사랑이든 뭐든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시대다. 돈과 재능의 이상적인 결합이 놀라운 새 게임을 탄생시킬 것인지, <울티마>보다도 <리니지>보다도 못한 어정쩡한 사생아를 낳을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다.박상우|게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