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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2]

<빨간 메니큐어>의 권지연 감독

어머니의 손에 바치는 애가

<빨간 메니큐어>는 도시에 살고 있는 딸이 시골에서 죽어간 어머니에게 바치는 마지막 애가이다. 러시아 국립영화학교의 출신답게 권지연 감독은 “산문적이기보다는 시적인” 방식으로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타국에서의 오랜 유학생활 중에 이야기가 떠올랐고, 한국에 돌아와서 제작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과 <얼굴값>에서도 연출부를 한 경험이 있는 권지연 감독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것, 바로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매력” 때문에 영화에 빠져든 것 같다고 고백한다. “항상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또 잘 알고 있는 사람들로 캐릭터를 잡으려고 한다”는 그녀의 첫 번째 한국에서의 출발이 바로 어머니와 딸에 관한 영화 <빨간 메니큐어>이다.

-러시아 국립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22살 때, 3학년을 마친 1997년에 러시아에 가서 2002년에 졸업했다. 그 전 대학교에서도 노어노문학을 전공했었다. 그때 연극 동아리에서 배우도 하고 연출도 했었다. 1년마다 학회에서 연극을 올리는데 내가 그중 한 작품을 연출했었다. 우연히 무대를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는 관객의 시선을 보는 순간 이런 계통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교수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러시아에 국립영화학교라는 데가 있고, 타르코프스키 감독도 그곳 출신이라는 말을 들려주셨다. 6개월 정도의 어학 연수를 마치고 입학했다.

-전작 <플롯>과 <애가>는 어떤 영화인가.

=<애가>는 2000년에 만든 35mm영화다. 7분30초 정도. 첫 작품이고, 무성영화다. 내가 다닌 학교는 첫 작품을 무성영화로 찍게 한다. 내가 살던 하숙집 주인 할머니가 체첸분쟁 때 두 아들을 잃은 사람인데 그분을 모티브로 삼았다. 전쟁 때 아버지를 잃은 아이를 주인공으로 했는데, 전체가 시적인 분위기라 스토리를 명확히 설명하긴 힘들다. 그 다음 영화 <플롯>은 졸업작품이다. 5년 넘게 러시아에서 유학생활 하면서 이방인으로서 느꼈던 점들을 러시아의 젊은 연인들을 중심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개방 이후 갑자기 부유층이 되고, 인텔리에서 지금은 경제적으로 몰락해버린 그런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빨간 메니큐어>는 어떤 영화인가.

=이 영화는 러시아에 있을 때 구상한 것이다. 2002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영화제에 간 적이 있다. 한국어로 해석하면 <동양 엘레지> 정도가 되나?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일본에서 비디오로 촬영한 그 영화를 보고 연상작용이 일어났다. 동양화처럼 세로 화폭으로 찍었는데, 고향 생각도 나고 엄마 생각도 나고. 그때 나도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이번에 심사위원들이 <플롯>을 보고 나서 이방인인 내가 러시아의 정서를 무척 잘 반영했다는 말을 했다. 관찰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더 잘 보인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다시 생각하면서도 본질적인 것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내면적인 고향을 찾아들어가는 영화이다.

-“현대인들이 잃어가고 있는 무언가를 고민”한다고 기획의도에 썼다. 그 무언가는 무언가.

=사람들이 ‘미’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좋은 집, 좋은 차, 깨끗하고 아름답고 정돈된 것들. 그런 것말고 시골집같이 허름하고 누추한 곳의 미… 어차피 인간이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자꾸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영화에서 네일아트숍에서 일하는 딸은 죽은 엄마의 손을 보고 비장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마 길을 지나가는 제3자의 손을 보고는 그런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아름다움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이미지가 중심의 영화가 될 것 같다.

=단편이라면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시의 형식이 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미지가 중요해진다. 여기서는 오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하지만 도시와 시골이 너무 도식적으로 대비되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한다.

<빨간 메니큐어>는 이런 영화

출세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희는 이미 20대 후반이 되었다. 그녀는 네일아트숍에서 남들의 손톱을 손질해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게 되고 희는 어머니가 계신 시골 고향으로 향한다. 그러나 도착한 고향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시신이다. 희는 어머니의 주검을 앞에 두고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환상을 겪는다. 그리고는 죽은 어머니의 거친 손에 빨간 매니큐어를 정성껏 바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