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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VS 다운로드

묻겠는데,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까마득한 기억 속의 어떤 시험문제였는데, 그 답을 적기가 의외로 까다로웠다. 즉 나는, 나의 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그런 유형의 인간이었다. 꿈이라, 그런 걸 가져도 될까? 의심하면서도- 그 순간 나는, 정말이지 <꿈>이란 걸 꼭 한번 가져보고 싶었다. 결국 나는 그 문제의 답란을 비워둔 채 일어섰다. 그래서 묻겠는데,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NHK의 <실크로드>를 본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마땅한 꿈을 찾아 헤매던 나에게, 그것은 적당한 하나의 샘플이 되어주었다. 그런 이유로, 언젠가 실크로드를 자력으로 횡단하는 것이 나의 꿈이 되어버렸다. 일단 면허부터 따야겠지? 낙타와 피라미드와, 두어 그루의 야자수가 그려진 <카멜>을 피우며, 나는 중국과 인도와, 아라비아와 유럽을 떠올리고는 했다. 중국과 인도와, 아라비아와 유럽이라니! 뻐끔뻐끔 도넛을 피워 올리며, 나는 일사병에 걸린 낙타처럼 몽롱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도넛이 하늘로 희석되던 그 순간이, 마치, 엊그제 같다. 불과 엊그제까지, 나에게 그런 꿈이 있었다니!

면허를 따긴 했으나, 실크로드에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즉, 다른 할 일이 자꾸만 생겨나는 것이었다. 나는 졸업을 해야 했고, 취직을 해야 했고, 또 생활을, 영위해야 했다. 컴퓨터를 배워야 했고, 인터넷을 사용해야 했으며, 휴대폰을 지니고, 이메일의 주소를 생성하고, 모두가 보는 TV프로그램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봐둬야만 했다. 나는 차를 사야 했고, 주택청약통장을 마련해야 했으며,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즉 파리바게트에서 갓 구운 모카빵을 산다거나, 이를테면 비의 <태양을 피하는 법>의 가사 정도를 외워야 했다. 둘러보니, 어느 날 나는- 길을 떠난다기, 보다는, 주저앉은 낙타가 되어 있었다. 낙타야 이곳은 어디니? 이곳은, 다운로드의 한복판이야.

다운로드라니? 둘러봐, 지금 모두가 이곳에 있어. 삶은 과연 실크로드가 아니라 다운로드였음을, 서른을 훌쩍 넘긴 이 나이에야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아니 우리는, 결단코 단 한번도- 저 실크로드 위를 걸어가본 적이 없다. 묻겠는데, 오늘 당신은 몇개의 파일을 다운로드받았는가? 몇개의 동영상을 다운로드받았으며, 몇개의 뉴스와 몇개의 정보와, 몇개의 견해와, 몇개의 상념과, 몇개의 감상과, 꿈을, 다운로드받았는가? 묻겠는데, 당신의 삶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나는 자꾸만 대답을 회피하고 싶어진다. 다운로드를 받을수록, 등 위에서 불어나는 지방질의 혹과, 다시 그 무게로 주저앉는 낙타의 당혹스러움. 어쩌면 내가, 나의 삶이 신기루였다는, 그 자괴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겠는데,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나는 요사이 자꾸만 어떤 대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오토매틱으로!). 그것은 좀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고, 현실적이어서, 마치 오래전부터 꾸어온 그런 꿈, 같다. 글쎄요. 몇평 이상의 집에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안주하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더, 올라가고 싶어요. 지방질의 혹과 같은, 아마도 이런 종류의 꿈은- 지금 당신의 꿈과, 또 당신의 꿈과, 그 옆에 앉은 당신의 꿈과, 그 맞은편 당신의 꿈과 일맥, 상통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 같은 서버를 쓰고 있다. 아쉬운 일이지만, 할 수 없다.

거의 15년 만에, 김수영(金洙暎)의 시집을 펼쳐든다. 묻겠는데,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답을 못했던 시절의 통독서이다. 신문이나 보는 대가리에서 뭐가 나오겠냐는 김수영의 말을, 나는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다. 글쎄 다운로드나 받는 대가리에서 뭐가 나오겠냐고, 나는 물냄새를 맡은 낙타처럼 절실한 표정으로 끄덕거린다. 실크로드를 걸을 것인가, 다운로드를 걸을 것인가? 우리의 진짜 꿈은 그 승부의 결과물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거나 당신도 실크로드와 다운로드의 갈림길에 서 있거나, 아니 아마도, 열심히 다운로드를 받고 있거나, 다운로드의 끝에서 이미 나처럼 다운이 돼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까지의 꿈은 집어치우자. 이런 말해서 미안한데, 우리의 꿈은 모두 다운로드받은 것이었다. 묻겠는데,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박민규/무규칙이종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