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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가는 홍 이병

미국산 쇠고기를 사골로 드셨는지 한나라당의 홍사덕 원내 총무가 삑사리를 냈다.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들은 동시에 김정일도 좋아한다나? 이런 말 듣고 감명받는 한나라당 골수 지지층이 어떤 부류인지 대충 감이 온다. 아마도 신체 연령과 정신 연령이 현격히 차이가 나는 사람들일 게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신체연령―정신연령=50년±알파’라고 할까? 한나라당이 기어이 망조가 들긴 든 모양이다. 한나라당의 추락은 정치적 몰락 이전에 생물학적 몰락이다. 보라, 인간의 추악함을 대지로 되돌리는 위대한 자연의 힘을….

그 처참한 수준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내가 홍사덕 총무를 치는 것은, 적어도 그는 뺀질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11월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그는 “국군이 이라크에 파병될 때 제1진과 함께 현지로 떠나 한달간 사병으로 근무하겠다”고 말했다. 얼마나 장한가? “우리 젊은이들을 위험한 지역에 보내기로 결정하면 위험의 일부라도 나누는 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것이다. 동작도 빨라 “이미 지난달 6일 조영길 국방장관과도 사병근무 얘기를 다 끝냈다”고 한다.

그뿐인가? 홍 총무는 그에 앞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국회의원들은 물론 고위공직자 자제들이 자진해 파병 대열에 참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한 바 있다. 영국의 군인 묘지에 가면 묘비에 “Sir”이라고 씌어져 있다고 한다. 전쟁이 나면 귀족들이 앞서서 싸우는 고귀한 전통의 시각적 표현이리라. 드디어 이 전통이 우리나라에도 창조될 모양이다. 그리하여 올해 4월에 꾸려진다는 파병 부대에 섞여 있을 그 고귀한 혈통들의 화려한 진용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홍사덕 이병, 지금 시간이 없다. 태평하게 총선 걱정할 때가 아니다. 파병 부대가 편성되면 교육기간이 최소 5주. 생존과 임무수행에 관한 노하우를 습득해야 한다. 총선이 있는 시기에 어차피 홍 이병은 훈련소에 있어야 한다. 거기서 의원 아드님들과 함께 ‘우로 굴러, 좌로 굴러’ 유격훈련도 받고, ‘약진 앞으로’ 각개전투도 배우고, 지뢰나 폭발물 제거 훈련도 받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당장 헬스클럽 다니며 뱃살부터 빼야 하지 않겠는가. 아울러 식사조절로 얼굴에 번지르르한 그 기름기도 빼는 게 좋겠다. 기름기는 야간 전투시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최병렬 하사는 선임 이회창 하사의 졸병들부터 단속해 먼저 명령계통부터 세워야겠다. 김영일 상병은 자금조달에 조예가 깊어 반군자금으로 파병비용 댈 인물이다. 차떼기 특기의 최돈웅 일병은 운전병, 김용갑 상병은 미군부대 보초를 서면 좋겠다. 한-미동맹의 화신이니 보초 시간 외에는 이라크인들 사이에 열심히 미군철수반대 운동을 일으키고 다닐 게다. 정형근 일병이야 원래부터 유명한 저격수, 반군들의 가슴이 곧 DJ의 심장이라 가르치면 된다. 게다가 ‘조직’ 깨는 데는 선수, 후세인 심문 맡겨놓으면 그 날로 이라크 반군조직은 와해될 거다.

전투부대 편성은 이만 하면 됐고, 재건부대가 남았다. 베테랑 권노갑 하사가 아쉽다. 민주당의 “수도꼭지”로 식수난으로 고생하는 이라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데. ‘실미도’처럼 어떻게 안 될까? 문제는 노무현 소위다. 꼭 보내야 하는지 확신이 안 선다. 상수도 대신 장수천 샘물 장사나 할 게 뻔하고, 하수도 건설 능력도 “10분의 1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측근들 하는 일도 모르니 통솔력에 문제가 있고, 게다가 보내 놓으면 뭐하나? 툭하면 “못 해먹겠다”며 소대장 재신임받자고 할 텐데….

참, 홍사덕 이병은 어디에 써야 하나? 소속을 일곱번 바꾸어 “무지개”라 불리는 이분은 색감이 유난히 발달했으니 막사 뼁끼칠 맡기면 되겠다. 그 동네 사병들, 투우장의 소처럼 특정 색깔에 마구 흥분해 사기충천해지는 습성이 있으니, 내무반 미화는 역시 빨간색이 제격이다. 한 가지, 실내에서 칠을 너무 오래하다 보면 페인트 냄새에 중독되어 횡설수설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도록. 아니, 벌써 시작됐나? 김대중 얼굴이 빨간색 “친북”으로 보이다가, 파란색 “철학”으로 보이다가….

진중권/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