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전적으로 믿는다”는 신임으로 성사된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박사처럼 생긴 감독님”을 붙들고 “(만약 이 역을 안 주신다면)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될 겁니다. 개봉하면 꼭 볼 거예요”라며 농담 반 협박을 할 정도로 <맹부삼천지교>의 현정은 소이현의 마음을 더더욱 잡아챘다. 미리 보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어기고 훔쳐서 본 시나리오, 그 안에 살고 있는 현정은 “살짝 건방진 것 같지만 착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여린”, 한마디로 “정말 용감하고, 멋있는” 배역이었다. “잠잘 때 빼고는 잠시도 가만있지를 않는” 그래서 웬만한 배역은 모두 “발로 뛰어서 얻어낸 것”이라고 자부하는 소이현. “오디션을 보고 떨어져야 그나마 화가 안 날 것 같아서” TV드라마 <노란 손수건>의 응시장을 들어섰고, <선녀와 사기꾼> <때려>를 거쳐 영화데뷔작 <맹부삼천지교>에 이르기까지는 탄탄대로였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공부 잘하고 순하기만 한 남학생 맹사성을 때로는 지켜주고, 때로는 끌고다니면서 적극적인 풋사랑의 기운을 마구 내뿜는 현정과 소이현은 더없이 어울린다.
그렇게 활발한 그녀는 고등학교 때 선도부였다. “리더십 하나는 타고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일 거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영향? 무슨? 국가대표 권투선수 출신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친구들 중에도 무술 유단자는 수두룩. 아버지와 너무 친해서 별종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라고 하니, 그 열정의 일부를 아버지에게 빚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싶다. 그러다가 갑자기 묻지도 않은 대답 한마디. “하지만 저 날라리 아니었어요. 1등도 해봤고, 꼴찌도 해봤어요.”
소이현은 격투기를 배우는 대신 무용을 배웠다.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전주에서 서울로 학교를 옮긴 뒤에 그만두었지만 무용교수의 꿈도 있었다고 한다. 지방에서 서울로의 상경이었음에도, 분명 “강남에서 사고치고 강북으로 쫓겨온” 것일 거라고 오해받았던 학창 시절이 <맹부삼천지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강북의 생선장수 맹만수와 그의 아들 맹사성이 현정이 살고 있는 강남으로 전학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바로 <맹부삼천지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20살을 갓 넘긴 소이현은 신인답지 않게 부담없이 연기해온 것에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가벼운 면뿐만 아니라 무겁고 진지한 면까지도” 충실히 갖춰야겠다는 다짐이 이번 영화를 하면서 얻게 된 교훈이다. 책도 많이 보고 연기공부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은 연기자에서 배우로 새로 태어나야겠다는 올해의 소망 때문이다. “소이현이라는 연기자가 더이상 신인이 아니기를… 그게 올해 소망이죠. 저는 아직 제가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연기자고, 안성기 선배님이 배우죠.” 배우 소이현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