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가 기억난다. “버려진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수집가의 열정을 향한 아녜스 바르다 자신의 ‘수집가적인’ 세심한 시선은 초기작 에서도 분명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유명 가수인 끌레오의 노래를 만들어주는 미셀 르그랑의 달콤한 음악처럼, 파리라는 변덕스럽고 사랑스러운 공간의 무드를 아녜스 바르다는 정확하게 포착해낸다.
사진과 다큐멘터리 작업으로부터 영화로 넘어온 전력에서 끌어낸 이미지에 대한 예민한 감식안으로, 바르다는 파리라는 공간에 혹은 끌레오라는 여인의 혼란스러운 마음에, 혹은 언제나 생사의 갈림길을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서 교차되고 있는 갖가지 상이한 요소들의 격자무늬를 섬세하게 짜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암에 걸렸는지의 여부를 알려줄 검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끌레오가 거리를 서성거리는 2시간을 실시간으로 따라가며(실제 상영시간은 90분이지만), 병원 근처를 불안스럽게 맴돌며 때로는 초조하게 쇼핑에 몰두하다가 옛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무성영화를 보거나 때로는 짧은 사랑의 예감에 행복해지거나….
시공간이 압축된 소우주와 같은 상황이 됨으로써 여주인공의 심리에 좀더 포커스를 맞출 수 있게 되는 영화적 진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아름다움을 향한 허영 섞인 갈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5시의 불안한 끌레오와, 누군가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어주면서 삶 속에 내재한 죽음에 용감하게 맞설 수 있게 된 7시의 평온한 끌레오 사이의 간극은 그렇게 분명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김용언
Cleo de 5 a 7 / 1962년 / 아녜스 바르다 / 1.66:1 / DD 2.0 / 알토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