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5년 전에 미술대학을 졸업할 때 나는 그림을 한 트럭 싣고 학교를 나왔다. 그 후로 얼마나 많은 전·월세 작업실을 전전했는지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는데, 그러는 동안 그 많던 그림은 다 상하고 망가져 버려지고 지금은 그닥 크지 않은 그림 몇점만 겨우 보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이제는 크고 두터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에 공포를 가지는 소심한 그림쟁이가 되어버렸다. 평균 1∼2년마다 한번씩 이사를 해야 했던 셋방살이 인생은 무엇보다도 이삿짐이 간편해야 하는데, 트럭 가득히 캔버스를 싣고 수시로 이사를 다녀야 할 형편에 대작을 꿈꾸는 화가란 역시 비현실적인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결국 물량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미술보다 질량이 없는 음악을 더 가까이 하게 되었다. 통기타를 가지고 이사를 다니는 풍경은 한결 자연스럽다. 어쩐지 ‘집시의 시간’ 같다.
보통 사람들도, 길어야 2년 정도 살다 이사 갈 셋방살이라면 벽지 하나 마음대로, 커튼 하나 내 맘에 들게 맞춰 달아놓을 이유도, 여유도 있을 리 없다. 셋방살이는 일종의 유랑민이다. 그러나 자기 소유의 집이라도 부동산 투자가치와 학군과 또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이유들로 한곳에 정착할 수 없는 오늘의 우리 풍습에서 누군들 유랑민이 아닐까. 이 땅 어느 곳에 정착민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사회를 구성하고 문화의 발상지가 되는가. 어디를 가나 임시거처일 수밖에 없는 유랑민에게 특히 ‘환경예술’은 가장 먼저 유보될 수밖에 없는 거추장스러운 옵션이다. ‘이동’이란 시간적인 것이고 ‘정착’이란 공간적인 개념이다. 그런 까닭으로 제 국가, 제 국토없이 방랑하는 유랑민족 집시에게 ‘시간예술-음악’은 있으나 ‘공간예술-미술’은 없다. 떠돌이 집시의 문화에 미술과 건축과 디자인이 발달할 수 없다. 장서를 보관할 수 없으니 문학도 존재하기 어렵다. 안정된 극장이 필수요소인 연극과 오페라 같은 극예술도 존재할 수 없다.
‘문화’(culture)의 어원이 ‘농사짓다’라는 뜻의 라틴어 ‘cultur’라니, 과연 문화란 것은 한곳에 정착하고 생활의 기반이 안정이 됐을 때 ‘꽃피는 것’이지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유랑민족이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에게도 무엇인가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하는 집시의 시간이 오래도록 흐르고 있다. 이 집이 평생 살 집이 아니듯 이 직장도 천직이 아니요, 이 마을도 내 고향이 아니다. 기회만 된다면 떠날 것이다. 더 나은 곳으로. 그때까지 모든 예술적 공간과 꾸밈의 문화는 유보되어 주변환경은 엉망으로 방치되어 있고 민족적 미적감각은 나날이 퇴화되고 있다.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