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승준(33), 유소라(20), 이중영(32), 윤성호(27)씨
2000년에 문을 연 뒤 세 번째로 개최된 인디비디오페스티벌은 ‘래디컬 희·노·애·락!’(RADICAL 喜·怒·哀·樂!)을 올해의 기치로 삼았다. 관습화하지 않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일상을, 디지털카메라를 펜 삼아 적어보자는 의도다. 더불어 정리된 영화문법도 얼마간 무시하자는 도발적 제안이다. 나긋한 내레이션과 짜임새 있는 플롯, 배우들이 사라진 공간에 상상력이 꽉 들어찼다. 12월11일에 열린 폐막식에서는 4개 부문의 시상식이 겸해졌다. 래디컬상, 희노애락상, 아이공상, 관객상의 주인공은 각각 윤성호(27), 이승준(33), 이중영(32), 유소라(20)씨. 모두 217편의 출품작 가운데 뽑힌 이들 네명의 영상은, 상대적으로 명확한 메시지가 드러나는 유소라의 을 제외하곤 모두 독특한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래디컬상을 수여받은 윤성호의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36분)은 각각의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연결돼 있다. 예컨대 극중 성호의 꿈에 등장하는, 독립영화 감독 마이클의 꿈에 등장하는, 샴쌍둥이 감독의 꿈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아들 식이다. 많은 주제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고 싶었기에 접합이 어려운 이야기들을 꿈이라는 매개체로 이었다는 게 윤 감독의 설명. 실제로 영화는 일상다반사에서 사회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다들로 이뤄져 있다. 극중 대사와 관련해서는 한글자막 처리를 하고, 그 위에 전혀 엉뚱한 영어 회화를 덧입혀서 발언자인 감독 자신을 슬쩍 비꼬기도 한다. 희노애락상을 수상한 이승준은 다양한 경계에 걸쳐 스스로 장르 파괴의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사진을 전공했으며 물리학에 심취한 이 감독의 주된 관심은 시공간. 이번에 수상한 〈yo yo time2〉(4분) 외 두개의 작품에서는 화면분할과 편집을 통해 시공간의 콘티뉴이티를 고발한다. 일관된 시간과 장소에 대한 의심을 전면에 내보이며, 묻히고 접힌 공간들을 새롭게 전시한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직관적 깨달음이 불현듯 찾아온다. 무소부재, 색즉시공의 동양 사상을 진동추(요요), 기차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했다.
아이공상의 <同異映畵 동거의 법칙>(이중영, 16분30초)은 같은 듯 다른 두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같은 장면으로 이루어진 두편의 영화에서 한편은 음악만 흐르고, 다른 하나는 감독이 직접 녹음한 내레이션이 깔린다. 설명이 부재한 화면은 몰이해를 불러오고, 어느 관객은 답답해하고 어느 관객은 사유에 잠긴다. 다른 한편은 감독의 해설판인 셈. 두편을 이어서 보고 있노라면 상상력의 제한이란 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의사소통이 부재한 두 남녀가 겪는 관계의 단절을 비춘다. 관객상을 받은 유소라의 〈D-?〉는 수능 직전에 놓인 수험생의 일상이 담겨 있다. 수능은 끝이 났지만, D데이는 여전히 까마득히 멀리서 아이들을 짓누른다. 하루하루가 D데이며, 죽음이 D데이인 것 같다는 감독의 독백이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