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클라크의 SF, 혹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에서 인간은 인류 탄생과 진화의 비밀을 찾아 저 광대한 우주로 탐사를 떠난다. 우주. 그 크기와 구조와, 존재 이유를 우주의 티끌 같은 우리가 어찌 깨달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존재의 힘에 이끌리기도 하고, 난파선처럼 방황하기도 하다가 드디어 그 끝없는 심연과도 같은 대우주의 오디세이를 끝내는 마지막 순간에, 노먼은 태초의 생명 ‘스타 차일드’가 되어 다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할 지구를 내려다보게 된다. 우주는, 다름 아닌 또 하나의 거대한 자궁子宮- 탄생의 집이었던 것이다.
현대의 과학만능주의적 사고방식이 상상력을 지배하기 전에 살았던 옛 선지자들은 과연 저 가늠할 수 없는 우주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가졌기에 우주를 ‘집宇 집宙’로 표기했을까? 宇는 ‘전방위적 공간개념을 포함한 집’이라는 의미가 있고, 宙는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의 개념이 포함된 집’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어조사于 말미암을由’에 지붕을 얹어 집을 지으니 우주가 된다. 오늘날 현대과학의 복잡한 수식과 초고가의 온갖 장비들을 동원해서 분석한 우리의 우주는 알고보니 정말 블랙홀이니, 웜홀이니 하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문’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억측하건대, 우리가 모르는 더 복잡한 차원의 우주는 분명히 어떤 종류의 지붕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자장磁場이거나 전혀 다른 차원의 비틀린 시공간이거나 혹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성질의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마치, 꼭 지붕처럼 생겼을 것이다. 하나의 우주공간의 끝은 어디인가에 대한 의문도 우주를 ‘집’이라고 명명한 데에 중요한 실마리가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우주가 집이고 사람사는 집은 또 작은 우주다. 작은 우주는 또 다름 아닌 생명탄생의 집 자궁이다. 자궁은 집이고 집은 우주이고 우주는 자궁이다(아서 클라크는 분명히 ‘宇宙’라는 한자 단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옛 선인들은 집을 지을 때도 집터를 잡고, 기둥을 올리고, 담을 쌓고 창을 내고 문을 트는 데 있어서 범우주적 시공간 개념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할 터이다. 일상 속에 풍수지리는 말할 나위도 없고, 고대의 피라미드와 신전들과 무덤들과 궁궐들이 하늘과 별들의 운행에 그토록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늘은, 별은, 우주는, 하나의 지붕이다.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http://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