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은 고립된 섬이다.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한면은 철책선으로 막혀 있다. 반세기 동안 한반도 남쪽은 한국인의 감옥이었다. 게다가 세계사적으로 아주 ‘예외적인’ 단일민족 사회(라고 우긴)다. 물론 단일민족이란 없다(이건 우리 집안의 비밀인데, 사실 내 혈통은 여진족이다. ^^). 순수 혈통이라니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다행히 단일민족은 ‘신화’일 뿐이다. 그래도 여기 ‘이상한 나라’에서는 신화가 현실로 여겨진다.
불행히도 단일민족의 자긍심은 이 땅의 상상력을 가두어왔고, 한국인의 감수성을 닫아버렸다. 그래서 외국인은 언제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드라마에 외국인 혐오증(제노 포비아)이 엿보이는 캐릭터가 나와도 낯설지 않다. 현대극에서는 아예 외국인이 등장하지도 않지만, 사극에서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단골 악당으로 열연한다.
시청률 50%를 넘긴 초절정 인기드라마 <대장금>에서 수라간 궁녀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은 중국 사신들이 묵는 ‘태평관’이다. 명나라 사신들이 어찌나 까탈을 부리고, 트집을 잡는지 태평관에 가면 전혀 태평하지가 않다. 죽어라 고생하고도 좌천되기 십상이다. 때는 최 상궁과 한 상궁이 수라간 최고상궁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던 중. 최 상궁은 음모를 꾸며 수라간 최고상궁을 궁 밖으로 쫓아낸다. 최 상궁이 수라간 대행 최고상궁이 되자, 라이벌 한 상궁과 장금이를 ‘찍어내기’ 위해 태평관으로 보내버린다. 물론 착하디 착한 두 사람은 모질디 모진 명나라 사신을 만나 호된 시련을 겪는다. 소갈(당뇨)에 걸리고도 기름진 음식만 찾는 명나라 사신에게 ‘풀밭’투성이인 상을 올렸다가 엄벌을 받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결국 장금이가 명나라 사신을 개과천선시키는 것으로 매듭되지만, 막판의 반전에도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어디 <대장금>뿐인가. 사극에서 중국인은 죄다 무뢰한이다. 일본인 아니 왜구는 모두 냉혈한이다. 언감생심 개과천선이라니. 마구 죽이고 또 죽인다. 올해 들어서만 <천년지애>에 다쓰지(김남진)가 냉혈한으로 등장했고, <다모>에 왜구들이 조선 역모세력과 연합한 칼잡이들로 묘사됐다. 이처럼 중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묘사는 상상력이 필요없다. 일본인은 호시탐탐 조선반도 침탈을 노리는 도적떼고, 중국인은 내정간섭을 일삼는 되놈이면 그만이다. 고증이 웬말인가. 중국인에게는 간사스러운 염소수염만 붙이면 그만이고, 일본인에게는 머릿기름만 잔뜩 발라주면 끝이다. 만약 중국, 일본 드라마에서 한국인이 이렇게 묘사되었다면? 아마 인터넷을 타고 사발통문이 돌아 그 드라마를 만든 방송사 사이트는 초토화됐을 게다. 이처럼 우리에 대한 부정적 묘사에는 몹시 민감하지만, 남에 대한 부정적 묘사에는 매우 둔감한 것도 조선의 전통이다.
물론 부정적인 묘사에는 근거가 있다. 중국의 내정간섭과 일본의 침략에 시달린 역사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 언제나 내정간섭만 하고, 일본이 항상 침략만 했을까. 글쎄다. 아무리 대표 이미지라 해도 지나치게 ‘단일’하다. 기억에 남는 긍정적인 일본인상, 중국인상은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드라마에서 일본인과 중국인은 주변인물일 뿐이다. 오히려 주변인물에 대한 묘사라서 더 무섭다. 아무 생각없이 만드는 주변인물의 캐릭터에서 편견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라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서 검열을 하겠지만 주변인물은 고정관념대로 만들게 마련이다.
매일 편견덩어리 드라마를 보고 사는 이들이 어떻게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텔레비전의 외국인 혐오증은 거리의 애국주의와 거리가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노 사건으로 촉발되고, 월드컵 4강 ‘신화’로 절정에 달하고, 촛불집회의 열기로 이어졌던 21세기 ‘대한민국’의 애국주의 말이다. 배타적인 감수성에 먹고살 만해졌다는 자신감까지 덧붙여져 만들어진 애국주의는 ‘감히 우리를 건드려’라고 말한다.
하물며 같은 노란 얼굴의 외국인에게도 거부감을 느끼는데 검은 피부의 외국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겠는가. 장금이의 승승장구에 이어지는 마감뉴스에는 비보가 날아든다. 이 땅에서 국경을 초월한 노동자의 죽음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제아무리 달리는 전철에 몸을 던지고, 공장에서 목을 매도 공허한 몸부림일 뿐이다. 우리 땅에 감히 허락없이 들어와서 험한 일 마다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의 부르주아를 증오하는 한민족 노동자들은 제 몸에 불을 붙이고, 제 목에 밧줄을 매달아도 외롭다. 감히 핏줄로 얽힌 대한민국 공동체의 평화를 깨려 했기 때문이다. 아∼ 대한민국! A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