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y and Michele's High School Reunion1997년 감독 데이비드 머킨출연 미라 소르비노, 리사 쿠드로우
학교 다닐 때 아주 친했던 친구 또는 중심에서 빛나던 친구가 아닌 친하진 않았지만 그리고 구석에 조용히 있었지만 어딘가 인상적이었던 아이를 사회생활에서 아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지…. 예를 들어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거리에서, 술집에서, 식당에서 아님 노래방 옆방에서….
나는 내가 일반적인 사람들과 같이 제때에 결혼을 하거나,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거나, 토끼 같은 아이가 있거나, 저금을 하거나, 효도하거나, 영리하거나, 착실하거나, 무척 정의롭거나…. 이런 모든 종류의 상황과 정반대의 경우라 굳이 학교 다니던 친구들의 모임에 가지도 않으려니와 그들 또한 나를 부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들의 모임 인터넷 커뮤니티를 몰래 들어가 훔쳐보긴 한다. ‘오호라… 이놈자식들… 이렇게들 살고 있군… 잘살고 있네들 그려… 흥!’ 하며 쩝쩝거리며 혼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술을 홀짝홀짝 마시곤 한다.
11월… 연말 이제 바야흐로 동기들 모임이라든지 동창들 모임이라든지 이러저러한 모임이 잦아지기 시작할 때이다. 언제였던가? 딱 한번 이런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넌 하나도 안 변했네” 이런 말을 들으니 어쩐지 슬그머니 기분이 마구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이상 그런 모임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쩜 그들도 날 배려하여 선의로 한 말을 난 자격지심으로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경쟁에 동참하며 비슷비슷하게 살게 되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의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그것을 마지못해 ‘개성’으로 인정해주는 병적인 사회…. 씁쓸하지만 이래야만 살아남는 개성이란 표현이 뭔가 거슬리며 건강한 개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것을 보고 싶다면 <로미와 미셸>을 보라. 준노처녀 로미와 미셸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이들은 고향을 뒤로 하고 도시로 와 로미는 백만장자들이나 살 법한 고급차 매장의 캐셔, 미셸은 백수…. 이들은 고등학교 동창인 순수왕따 골초소녀를 만난다. 놀랍게도 여성전용 담배 필터를 개발해 백만장자가 된 그녀는 고급차를 사면서 로미에게 10년 만에 열리는 동창회 소식을 전해준다. 그리고 로미와 미셸은 동창회를 가려고 엄청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양 블랙일색 패션으로(왜 성공한 커리어우먼은 항상 블랙패션일까?)꾸미고 동창회에 짠 하고 나타난다.
고등학교 시절 뚱뚱했던 로미와 교정기를 끼고 다니지만 어쩐지 디자인 감각은 뛰어났던 괴짜 미셸. 그녀들은 한번도 주목받거나 인기를 모았던 소녀들이 아닌 평범한 소녀들이었으나(순수왕따에서 2% 모자란 애들이었음) 나름대로 자신들의 방식에 자존심을 가지고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내가 보기엔 멋진 소녀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10년 만의 동창회에 조금은 주눅이 들었는지 거짓말을 꾸미기로 한다. 바로 자기가 3M의 포스트잇을 개발한 자라고 그럴듯한 거짓말까지 준비해간다(미셸은 그 공법을 꿈에서조차 술술 말하지 않던가… 하하핫). 하지만 이들의 거짓말은 들통나…. 이게 유쾌한 영화 <로미와 미셸>의 대략적 줄거리다. 감독은 그 유명한 <심슨> 시리즈의 총제작자이기도 하니 이 범상치 않은 영화 근성이 다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유치하다고 하지만 나에겐 너무 사랑스러운 영화. 난 이 영화의 로미와 미셸뿐 아니라 그 친구들의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너무 좋아한다. 말도 안 되게(정말 만화다, 이 장면은) 헬기를 타고 등장한 컴퓨터로 대재벌이 된 그 시절 초왕따소년, 진정한 투덜이 골초소녀에게 담뱃불을 항상 던져주던 정체불명의 카우보이(이녀석만 진정코 변하지 않았다)라든지 이건 정말이지 우리 ‘구석’ 친구들의 로망을 너무 재미나게 그려주거나 어루만져줘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구석에 짱박힌 친구들의 모습을 대입하며 위안받으며…. 게다가 마지막 댄스파티에서 로미와 미셸과 초왕따소년의 3인의 춤이란…. 가히 압권이다. 백조의 호수 같은 발레도 아니면서 그들은 너무나 심오하게 춤을 춘다. 자기들의 개성으로 말이다(이 춤장면은 그래서 그 당시 MTV 최고의 댄스상을 받았다). 우리도 한번쯤 나사빠진 춤을 춰보는 게 어떨까?로미와 미셸처럼 말이다. 초겨울 노래방에서 혼자서 탬버린까지 쳐대며 빙글빙글거리는 조명 밑에서 궁상떨며 노래부르지 말고- 노래도 주로 ‘부활’의 <론리 나잇> 같은- 친구들과 왁자지껄 술마시며 놀자. 그리고 얘들아… 사실 말이지… 나랑 놀아줘…. 으흑.김정영/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프로듀서 sicksadworld@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