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hu, The Little Stranger, 1989년 감독 바흐람 베이자이출연 수잔 타슬리미 EBS 11월22일(토) 밤 10시
이란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다른 감독의 영화를 봐도 어딘가 전에 봤던 영화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키아로스타미와 마흐말바프, 마지드 마지디 등 이란감독의 영화는 어린이와 전쟁, 가난과 진정한 우정 등 몇개의 소재를 공유하는 점이 있다. 바흐람 베이자이 감독의 <바슈> 역시 얼핏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간략한 서사만 보면 이 영화는 이란영화의 전형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소재와 키워드를 되풀이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바슈>는 놀랄 만큼 신선하다. 영화의 진정한 힘은 이란영화의 전형성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어느 한계선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 기이한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영화 <바슈>는 영화 매체의 근원적 매력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바슈는 이란 남부에 사는 10살짜리 소년이다. 전쟁 때문에 엄마는 불에 타죽고, 아버지는 집의 양탄자에 갑자기 구멍이 생겨 사라진다. 부모의 죽음을 본 바슈는 공포에 질려 파괴된 마을을 떠나 몰래 트럭에 올라탄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그는 어느 농가에 기대어 잠이 드는데 이곳에선 나이라는 여성이 남편이 일자리를 찾아 떠난 사이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나이는 바슈를 쫓아내려 하지만 생각을 바꾸고 도와준다. 그녀는 잠시 데리고 있는 것뿐이라고 여기며 바슈의 부모가 곧 올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바슈는 나이가 자신을 입양한 거라고 여긴다.
이런 줄거리의 영화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천국의 아이들> 등 다른 이란영화와 흡사하다. 어려움에 처한 아이가 있고 그를 도우려는 누군가가 있다. 둘 사이의 교류가 싹트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그런데 <바슈>를 보면서 영화가 개성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투박함과 양식화의 미덕이 공존하는 탓이다. 영화에서 바슈와 나이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첫만남부터 둘은 심상치 않은데 피부색이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나이는 소년에게 불신감을 드러낸다. 자연의 침입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려는 나이의 행동은 자체로 무척 거칠다. 카메라의 움직임과 편집 역시 투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일견 영화의 사실성에 방점을 찍은 듯한 특징은 <바슈>를 네오리얼리즘이나 1960년대 남미영화의 후계자로 보이게 한다. 반대로, 극단적으로 양식화된 배우의 연기 역시 영화의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바흐람 베이자이 감독은 이슬람 문화와 이란 전통 연극을 공부한 적이 있다. <바슈>와 <여행자>(1992) 등의 영화에서 베이자이 감독은 이란영화의 전통에 기대면서 독자적인 영화문법을 창조해냈다. 현실과 몽상이 교차하는 기법은 그의 영화에서 곧잘 발견된다. <바슈>에서 주인공 소년은 죽은 부모의 환영을 곳곳에서 발견하고 절규한다. 어른들의 폭력적 세계에 분노하는 것이다. 베이자이 감독은 강렬한 이미지의 영화로 기억될 만한, 이란영화의 숨은 거장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