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phant
Man 1980년,
감독 데이비드 린치 출연 앤서니 홉킨스 장르 드라마
영화랑 명불허전
데이비드 린치는 항상 신체를 통해 사유해왔다. <이레이저 헤드>(1977)는 기형의 태아와 지우개로 변해버리는 머리를 통해 현실과
꿈, 현실과 초현실을 밀착시켰으며, <블루벨벳>(1986)에서는 잘린 귀를 통해 도심 중산층의 이면에 숨어 있는 폭력과 광기를 폭로해냈다.
그리고 <로스트 하이웨이>(1997)에서는 분열되는 2개의 얼굴을 통해 무의식에 잠겨든 욕망을 들춰냈다. 그렇다면 이 영화, <엘리펀트
맨>(1980)에 등장하는 변형된 신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기괴한 영화감독쯤으로 알려진 데이비드 린치는 몇편의 16mm 단편영화 작업 이후, 76년 ‘그로테스크함’이라는 용어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는 영화 <이레이저 헤드>를 연출하게 된다. 개봉 당시만 해도 이 영화에 대한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냉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반문화에 열광했던 미국의 70년대 세대는 이 영화를 미드나이트 컬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레이저 헤드>의 이상한 성공은
후속작 <엘리펀트 맨>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감독을 물색하던 할리우드의 제작자 멜 브룩스가 <이레이저
헤드>를 보는 순간, 데이비드 린치야말로 <엘리펀트 맨>의 적임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영화는 차마 보기 힘들 만큼의 선천적인
기형을 가지고 태어나 사람들에게 ‘엘리펀트 맨’이라 불리던 19세기의 실존인물 존 메릭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는 ‘엘리펀트 맨’, 존을 발견한 의사 프레디는 그를 병원으로 데려와 보살펴준다. 존은 흉측한
외모와는 달리 지적이고 선한 마음을 지닌 인물. 그에 대한 기사와 연구논문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한다. 영화는
존의 외양과 내면을 통해 미와 추, 선과 악을 대비시키고, ‘구경거리의 사회’로 변화해가는 근대성의 이면을 추적한다. 시장과 병원으로 상징화된
근대성의 공간은 그 외관과 방식만 틀릴 뿐 존의 인간적인 삶의 권리를 되찾아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어쨌든 여전히 기괴하긴 하지만 계몽주의영화
같은 이 작품은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8개 부문에도 노미네이트되었다. 하지만 데이비드 린치에게 이 영화는 자신의 개성을 할리우드
영화제작관행과 타협해야만 하는 일보전진 일보후퇴의 결과를 가져왔다. 기괴한 상상력과 미술전공자 다운 강렬한 비주얼은 여전하지만,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데이비드 린치 특유의 도발적인 이미지들은 수그러들고 점차 내러티브에만 의존해가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영화적 만회는 또다른 컬트 <블루벨벳>과
90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광란의 사랑>에 가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정지연|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