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상대방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게 마련이다. 외모, 성격, 능력, 재력 등등…. 최근 나를 회의에 들게 하는 것은 8년간 이 업계에 몸담으면서 내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란 게 고작 ‘얼마만큼 많이 빌리느냐?’, ‘연체를 하는 사람인가, 아닌가?’ 등으로 고정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나의 기준에 의했을 땐 ‘대여료를 깎으려는 사람’ 또는 ‘연체료를 안 내는 사람’으로 인식될 위험성이 많기 때문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대여점 고객 중에 매일 밤 12시30분쯤 규칙적으로 오는 사람이 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비디오는 별로 안 보고 만화를 많이 본다. 하루에 여섯권씩 규칙적으로 본다. 그리고 가끔 연체를 한다. 그에 대한 나의 평가와 판단은 고작 그런 수준이었다. 어느 날 그가 연극표를 두장 건넸다. “시간되시면 보러 오세요”, 나는 심드렁하니 “배우세요?” 하고 물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말없이 씨익 웃을 뿐이었다. 지난주 일요일, 그가 준 표로 마지막 공연을 보게 되었다. 학전 대표인 김민기씨기 연출한 뮤지컬 <의형제>였다. 공연장에 들어가는 입구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 그의 얼굴 비슷한 사람이 있어 ‘혹시나’ 했는데, 그 뮤지컬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대작이었고, 게다가 그는 주연배우였다. 원래 춤을 췄다는 그는 연기력은 물론 노래솜씨가 대단했다. 몇년 만에 본 연극이었는데, 기립박수를 칠 만큼 감동을 받은데다 그에 대한 경외감이 들기까지 했다. 참고로 고객명 ‘신성우’로 입력되어 있어 몇년간을 잘못 알고 있던 그의 이름은 ‘배성우’였다. 우린 조만간 한잔하기로 했다. 이주현|영화마을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