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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권은주 2003-11-13

인터넷으로 어느 시사잡지에 실린 스와핑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외국의 관련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기에 웹 브라우저의 주소창에 주소를 입력하고 엔터를 치니 그 사이트로 가는 듯하다 난데없이 ‘두루넷 유해정보 차단 서비스’라는 화면이 뜬다. 어라, 이상하다 싶어 다시 해봐도 마찬가지다. 유해정보를 아예 서버에서 원천적으로 막아주는, 내가 신경써서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가 없으니 간편하고도 유익한 서비스임에 틀림없지만 안내문을 읽어본 뒤 고객센터로 전화해서 해지 신청을 했다. 고객 상담원이 그런 정책을 결정해서 시행한 건 아니겠으나 끝으로 한마디 했다. ”제가 알아서 차단할 테니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내가 이 딴 짓을 했을까? 유해정보를 차단당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세상에 널린 게 유해정보인데 뭐 그걸 꼭 인터넷에서만 찾을 게 뭐란 말인가. 이건 어쩌면 ‘자존심’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건 어른이건 스스로가 다 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이 제대로 됐건 아니건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는 일종의 자존심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그게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는 말이다. 가장 좋은 건 내버려두는 것이다, 알아서 하게.

어쩌면 자존심은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여름에 출간된 누군가의 옥중서한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도 ‘자존심’이었다. 그가 스물네살의 나이에 감옥에 들어가 17년 동안 지내는 동안 그를 지켜준 힘은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싶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통틀어,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장 자존심 센 사람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과거 한국사회에는 저항적 지식인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자취도 없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지금 어디론가 가버렸을까? 애초에 그들을 움직였던 힘은 무엇이고, 그것을 그만두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문제를 더 넓혀서 도대체 지식인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걸까? 어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 운동의 이념을 소리높여 주장한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 이념에 따라 곧이곧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념과 삶이 따로 노는 현상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이념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이념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을 사귄다고 해야겠지만 그들의 인간관계가 오로지 이념에 따라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인간적인 정에 끌리기도 하고, 그들도 학연과 지연을 벗어날 수는 없어 보인다. 게다가 가끔은 그냥 열받아서 만남이 정리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 역시 이념이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핵심요소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결국 사람에게 남는 것은 ‘내가 이 말을 한번 했는데 나중에 말을 바꾸면, 또는 그 말과 다르게 행동하면 말을 했던 내 입이 부끄러워질 테니까 그럴 수 없다’는 철저한 자기 감시뿐이다. 자기가 알아서 자기 스스로에게 다짐하기뿐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무엇을 주장했든 누구와 만났든 간에 그걸 곧이곧대로 지켜나가려는 태도가 그를 지탱하는 힘인 것이요, 이것을 우리는 자존심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지식인들은 얼마나 자존심 있는 존재들일까. 그들은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을 얼마나 오래도록 지키고 있을까. 그런 점에서 우익의 태두 조갑제씨는 참으로 자존심 있어 보인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무래도 좌우의 균형을 맞추려면 자존심 있는 누군가가 반대쪽에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강유원/ 회사원·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