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멕시코의 소도시 탐피코에 몰려드는 외국인은 두 종류다. 이곳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실권자거나, 아니면 본국에서 도피 중인 조무래기 범죄자. 멕시코인과 외국인 실권자 양쪽으로부터 배척당하는 범죄자들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가끔씩 굴러들어오는 일용직이거나 구걸뿐이다. 돕스와 커틴 역시 그렇게 하루하루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살아간다. 예전에 이곳에서 금을 캐내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봤다는 노인 하워드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돕스와 커틴은 지금까지 모은 얼마 안 되는 돈을 몽땅 투자하여 금을 찾으러 가기로 한다.
아무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작가 B. 트레이븐이 발표한 소설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은 소유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과 반자본주의적 비판정신으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출판사조차 트레이븐의 본명이나 얼굴을 알지 못했고, 작품들의 일관된 주제나 스타일을 보고 잭 런던이나 앰브로즈 비어스가 필명을 쓰는 게 아닐까, 혹은 유럽이나 남아메리카쪽의 혁명가가 아닐까 하는 추측만이 난무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중 전장에서 군인들의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허망한 생사의 갈림길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존 휴스턴이,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의 염세적인 테마에 이끌린 건 당연해 보인다. 그는 돕스와 커틴의 비극적인 모험담으로부터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진공상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전후 최고 스타였던 험프리 보가트의 ‘로맨틱한 안티히어로’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원작의 비열하고 냉소적인 톤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던 휴스턴은,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올 로케이션을 감행하며 아주 기이한 ‘안티-웨스턴-어드벤처 무비’를 탄생시켰다(전쟁 직후 영화 속에서나마 안락한 판타지를 기대했던 관객은 이 차가운 영화를 결코 사랑할 수 없었다. 대신 아카데미는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에 감독상과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안겨주었다).
그러니까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은 멕시코 버전의 <맥베드>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언된 부와 명성, 그리고 동시에 예정된 파멸과 비극. 동전을 던져주며 “앞으로 내 도움없이 살아봐”라고 빈정거리는 미국인 자본가에게 모욕당하고, 구두닦이나 레모네이드 장수라도 하고 싶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배척당하는 사회에서 숨죽여 살아가던 사내들은 황금의 유혹에 홀린다. “모험을 해야 게임이 되지”라고 희망에 부풀어 고행을 자청하던 남자들은 자신들의 자유 의지가 능멸당하는 순간 점점 미쳐간다. 네오리얼리즘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거칠고 황량한 배경,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산의 품속은 광대한 만큼 동시에 옥죄어오듯 협소하다. 바위와 물과 바람은 사내들의 행로를 자꾸만 비틀고,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내들은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보도록 강요당한다. 황금에 눈이 멀어 친구 커틴을 살해한(혹은 그렇다고 믿은) 돕스는 “양심이 있다고 믿으면 괴로워 죽을 거야”라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잠 못 이룬다. 죄지은 자들에게 수면이 약속하는 평화는 사라지고, 악마처럼 마녀처럼 시시각각 출몰하는 멕시코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약탈하는 백인들을 차갑게 비웃는다. 금맥을 발견함으로써 ‘왕이 되려 한 사나이들’은(존 휴스턴의 또 다른 영화이자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의 쌍둥이 같은 작품), 혹은 조셉 콘래드나 허먼 멜빌의 계보를 잇는 초라한 후예들은 일체의 낭만을 거부당한 채 운명적인 패배를 시인해야만 했다. 보물은 결코,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김용언 mayham@empal.com
The Treasure of the Sierra Madre SE1948년 | 감독 존 휴스턴 출연 험프리 보가트, 월터 휴스턴, 팀 홀트, 브루스 베넷장르 드라마 DVD 화면포맷 1.33:1 오디오 돌비디지털 1.0 출시사 워너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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