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It Again, Sam, 1972년감독 허버트 로스 출연 우디 앨런 EBS 11월9일(일) 오후 2시
“이것은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이야.” 영화는 낯익은 흑백화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떤 이별과 안타까움이 있다. 남자는 여자를 어디론가 떠나보내고 쓸쓸하게 돌아선다. 영화제목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마이클 커티스 감독의 <카사블랑카>(1943)의 한 장면이다. 엔딩이다. 객석에 앉아 입을 벌리고 스크린을 보는 이가 있으니 우디 앨런. 거의 넋을 잃고 영화를 지켜보는 중이다.
한눈에 봐도 영화 속 우디 앨런이 <카사블랑카>의 열렬한 팬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오래된 고전이 뭐가 어찌됐다는 것인가.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은 영화적 인용과 재현의 영역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서사가 어떻게 현대적으로 각색되고 있는지, 그리고 주요 장면이 반복해 인용되는지를 눈여겨본다면 흥미롭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의 주인공은 앨런. 그는 아내에게 이혼당한 남자이며 꽤나 소심한 성격이다. 친구인 딕과 그의 아내 린다의 도움으로 앨런은 다른 여성을 만나기도 하지만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이런저런 문제로 낙담한 앨런을 린다는 다독거리면서 위로한다. 차츰 린다와 사이가 가까워진 앨런은 그녀에게 마음을 품게 된다.
한편, 딕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만 설마 그가 앨런일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다. 앨런과 린다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서로 알고 있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의 서사는 낯설지 않다. 낭만적 불륜, 그리고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는 장애물 앞에서 이별을 선택하는 남자 이야기. 영화 <카사블랑카>의 줄거리와 기막히게도, 평행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험프리 보가트의 분신이 홀연히 등장하기도 한다. 긴 코트를 입고 나타난 험프리 보가트는 영화 속 앨런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들려준다. “자, 이제 그녀에게 키스할 때라구. 머뭇거리지 마.” 이런 식이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은 결말까지 마이클 커티스 감독의 원작을 흉내낸다.
우디 앨런은 험프리 보가트의 대사를 똑같이 옮기면서 “이 대사를 정말로 하고 싶었어”라고 흥분한다. 영화는 우디 앨런의 희곡을 원작으로 삼는다. 우디 앨런은 연출까지 겸하지는 않았지만 절반 정도 작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다. 그만큼 곳곳에 그의 흔적이 배어 있는 것. 이후 <스타더스트 메모리>(1980) 등 감독작에서 우디 앨런이 영화사적 고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것을 상기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은 허버트 로스 감독작이다. 그는 <풋루스>(1984) 등의 청춘영화와 뮤지컬을 만들 때 가장 원숙한 솜씨를 발휘했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에서 허버트 로스 감독은 우디 앨런의 원작을 좀더 평이하고 대중적인 화법으로 바뀌놓았으며 덕분에 여느 출연작에 비해 앨런이 출연하는 익살맞은 코미디로 만들어냈다. 우디 앨런-다이앤 키튼 콤비의 연기대결을 보는 것은 이들 배우를 아끼는 팬이라면 변함없이 익숙한 즐거움을 준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