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을 통한 마음의 정화’를 그린 독특한 코미디 <굿바이 레닌>은 통일 이후의 독일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를 냉정하면서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어루만진 수작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거짓말은 더 커지고 넓어진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되어버린 역사의 물고를 거짓으로 돌이킨다. 애초에 없던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만든다. 거짓 뉴스가 제작된다…. 독일영화 <굿바이 레닌>에서 아들이 통일된 독일의 역사를 반대방향으로 거짓 기술해야 하는 이유는, 그 거짓말을 통해서만 어머니의 슬픔이 유예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어머니의 마음을 상처로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은 거짓말뿐이다.
거짓말을 통해서라도 역사와 가족, 집단과 개인을 엮어내고야 마는 이 철저한 독일적 코미디의 음악을 맡은 사람은 뜻밖에도 프랑스 작곡가 얀 티에르센(Yann Tiersen). 어디선가 들은 이름이다, 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바로 <아멜리에>의 스코어를 쓴 음악가가 그. <아멜리에>에서의, 깜찍한 오르골과 정감어린 방도네옹 소리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그이다. 왈츠풍의 리듬을 타고 울려퍼지는 이런 유럽 전통 민중악기들이 주는 울림은 일상적이면서 따뜻했다. 색채감 넘치는 추억의 선율들을 제공해온 그의 음악은 사실 단연 프랑스적이다. 그의 미니멀한 반복악구는 예쁜 벽지에 그려진 반복되는 문양처럼 선명하게 귀에 들린다. 독일적인 중후함보다는 선명하게 반짝였다 사라지는 이미지를 추구하는 그의 음악은, 독일영화에 붙었다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고 생각하니 이것 참 특이하다. 별처럼 많은 음악가들이 존재하는 음악의 땅 독일에서 바로 독일 현대사의 심장부를 찍어낸 영화의 음악을 프랑스 사람이 맡는다니! 거 참 뜻밖의 선택이다, 싶다. 그런데 O.S.T를 듣고 있다 보니, 결과론적이지만, 그거 참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만일 이런 영화에서 독일 음악가들이 특유의 무게와 폭을 지닌 스트링이나 브라스를 좍좍 뽑아냈다고 해보자. 한 마디로 ‘오버’다. 너무 무거우면 밑이 뻐개진다. 감정의 밑이 터지면, 영화의 집중력은 걷잡을 수 없이 흩어져버리고 만다. 그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특히 이런 영화에서 자국의 음악가들은 감정이 북받쳐 오버하기 쉬웠을 것 같다. 그러나 얀 티에르센은 담담하다. 게다가 통속적이다. 티에르센의 이 통속적 가벼움은 눈물 흘릴 일에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 영화의 컨셉과도 어울린다. 영화가 징징 울어야 할 대목에도 티에르센의 음악은 냉정한 국외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오히려 ‘바라본다’.
프랑스 사람의 음악이 한 발짝 물러나 사건들을 지켜보는 사이, 독일 사람들은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웃음 안에 실로 많은 것을 담으려 하고 있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 슈테판 아른트는 이렇게 말한다. “개개의 모든 행성들이 그 주변을 돌면서 그 일부가 되어 있는 하나의 세계인 별자리가 바로 가족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 사건들과 연루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정서적인 경험과 역사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 이것이 단순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프로듀서는 이처럼 철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역사를 다룰 때, 이런 맛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통일 이후에 우리 이야기를 다룬다고 생각해봐라. 독일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할 때의 북받침을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처럼 이해할 사람들이 또 있겠는가. 그러나 영화는 그 북받침을 철저하게 억누르고 그것을 객관화시킨다. 때로는 웃음이 냉정을 잃지 않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