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업 중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네티즌 원작 축약 반대 투쟁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리 포터> 시리즈의 5탄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그리고 초판만 무려 100만부가 인쇄되면서 약 40만부였던 국내 출판업계의 초판 최다부수 기록을 간단히 넘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6월에 출간된 미국 등 영어권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반응이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되리라는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전반적으로 엄청난 침체기에 빠져들어 있는 국내 출판시장에서 <해리 포터> 5탄의 이러한 성공이 반드시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닌 듯싶다. 아동도서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해리 포터> 5탄의 출시에 따라 다른 책들의 판매가 급감할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의 출현으로 인해 시장 내에서의 다양성이 훼손당하는 상황은, 비단 영화계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닌 것이다.
그렇게 출판업계의 시각에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과 동시에, 독자의 시각에서도 <해리 포터> 5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 주목을 끌었다. 책이 서점에 출시되기 이전부터 독자들이 제기했던 문제점은, 1권으로 출간된 원작이 무려 다섯권으로 나누어 출시된다는 사실이었다. 원작 자체가 분량이 늘어났던 4탄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이 네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을 때부터 일부에서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한권이 더 추가된 이번엔 그에 대한 이의 제기가 인터넷의 관련 사이트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일어났던 것이다. 물론 번역과 편집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음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경우, 한질을 구입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4만2500원은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라 그런 문제제기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원작소설이 분권되어 나오는 것에 대한 독자들의 반발이 발생하는 시점에, 해외에서는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에 있는 4편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두편으로 나누어 영화화해달라는 독자들의 반발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발단은 앞서 말했듯이 원작소설 자체의 분량이 크게 늘어난 4편을 준비하면서,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가 각색을 담당한 스티브 클로브스에게 최대 2시간30분 내의 러닝타임에 맞추어 어떻게 해서든 원작을 축약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스스로를 <해리 포터> 시리즈의 팬이라고 밝힌 몇몇 네티즌 팬들이 그 소식에 격분해 ‘<불의 잔>을 구하자’라는 이름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것. 그 홈페이지를 통해 모인 많은 팬들은 <해리 포터>를 상업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잘 보존되어야 하는 예술품으로 규정하며, 책 속의 내용 어느 한 군데도 축약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제작진들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최근 출시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현재 제작 중에 있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출연하기로 결정된 에마 톰슨.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의 분리 제작을 원한다는 주장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배너들.
물론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이미 다른 이슈에서 네티즌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던 전통적인 방법들이었다. 우선 온라인 청원 사이트를 열어, 영화를 두편으로 나누거나 아니면 5시간까지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내용에 대한 네티즌들의 동의를 얻고 있다. 10월23일 현재까지 2만여명의 네티즌 팬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성과를 달성했지만, 10만명의 동의를 얻어내 이를 워너쪽에 전달한다는 것이 주도그룹의 목표다. 또 다른 것은 직접 제작사에 항의 서한을 보내는 방법이다. 현재 홈페이지에는 구체적인 타깃과 샘플 서한까지 올라와 있어, 내용에 동의하는 네티즌 팬들이 손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해놓은 상태다. 이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인터넷 배너들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으며, 언론사들에 대한 보도자료 배포도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네티즌도 많다. 그 때문에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구하자’ 홈페이지에는 과거 유사한 사례가 성공했던 예가 첫 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1960년대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TV시리즈가 두 번째 시즌을 끝으로 종영에 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군의 팬들이 방송사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운동을 벌였고 결국 그 때문에 세 번째 시리즈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그 TV시리즈가 <스타트랙>이었다는 사실. 그렇게 세 번째 시즌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국 전국 지방 방송사들에 판매될 만큼 충분한 방영 분량이 되었고, 마침내 엄청난 인기를 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홈페이지에는 또한 <반지의 제왕> 시리즈나 <매트릭스> 시리즈 그리고 최근에 1편이 개봉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의 예가 여러 차례 언급되어, 한 작품을 두편으로 나누어 개봉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여하튼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소설 3편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제작 중에 있는 워너브러더스가 네티즌 팬들이 바라는 것처럼 4편의 구성을 바꿀지는 아직 미지수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부정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제작진 내부에서 비슷한 의견이 제기되어 검토될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긴 원작을 축약하다보면 한계가 드러나고, 결국 대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네티즌 팬들의 이러한 노력은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것이 네티즌 팬들이 정확히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구하자’ 홈페이지: http://www.savegof.com
<해리 포터> 시리즈 공식 홈페이지: http://harrypotter.warnerbr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