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편견과 편견의 전쟁터다. 한 집단에 지울 수 없는 오명이 붙어 있을 때, 그 오명을 지우는 방법은 역편견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동성애자의 이미지가 그렇다. 동성애자들은 변태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편견’을 만들어낸다. 남성 동성애자가 (특히 여성에게) 좋은 친구라는 이미지도 그 중 하나다. 촐싹거리고 꼴값떠는 징그러운 게이 이미지가 판을 치던 한국의 안방 극장에 마침내 다정다감한 게이 이미지가 도착했다. SBS드라마 <완전한 사랑>의 홍승조(홍석천)가 바로 그것이다.
드라마의 남녀주인공인 지나(이승연)와 시우(차인표) 사이에 홍승조가 있다. 세 사람은 어릴 적부터 친구다. 지나는 시우에게 일편단심이지만, 시우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친구로 지낸다. 승조는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관계의 현명한 중재자다. 특히 지나에게는 각별하다. 승조는 지나가 시우에 대한 미련으로 상심할 때마다 보듬어주고 위로해준다. 그는 원숙한 조언자이기도 하다. 지나에게 건네는 충고는 마치 할머니의 조언처럼 지혜롭다. 게다가 가사일에 팔 걷어붙이고, 아이들을 무척 잘 돌본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파니 핑크> 등에 등장하는 긍정적인 게이 이미지의 한국 버전인 셈이다.
<완전한 사랑>의 홈페이지에는 “나도 저런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여성들의 찬사가 자주 눈에 띈다. 홍승조의 이미지는 게이 남성들보다 이성애자 여성들을 매료시키는 것이다. ‘착한 게이’의 이미지가 게이들보다는 이성애자 여성들의 욕망에 더욱 충실하기 때문이다. 항상 나를 배려해주는 데다가 나를 덮칠 위험까지 없다니, 어느 여성이 이런 남자친구를 마다하겠는가. 결국 홍승조를 주조해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려는’ 이성애자(특히 여성)의 시선이다. 나쁘게 말해, 홍승조는 이성애자 여성들을 위한 게이 ‘엉클 톰’인 셈이다.
물론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동성‘연애’자라는 호칭에서 보여지듯, 게이에 대한 이미지는 오직 섹스를 중심으로 과잉성애화돼 있다. 홍승조 같은 다정다감한 게이는 과잉성애화된 게이 이미지를 탈성애화한다. 그러나 탈성애화된 게이 이미지는 정치적으로 절반만 올바르다. 거기에서는 섹스는 물론 연애감정까지 ‘거세된’ 동성애자만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는 인정하지만, 동성애자의 섹스는 상상하기 꺼려한다. 한국식 정치적 올바름의 현주소다. 동성애 혐오증의 심연에는 ‘동성연애’ 혐오증이 흐르고 있다.
뭇 여성에게 호감을 주는 게이 이미지에 대해 모든 게이들이 쌍수 들어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평범한 동성애자의 등장을 반기는 ‘착한 게이’파들이 있다. 이들은 “이 드라마 때문에 아줌마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는 것 같다”며 작가 김수현에게 헌사를 바친다. 어떤 이는 “꽃미남이 게이 역할을 맡으면 6개월 만에 동성애자 이미지 완전히 바뀔 텐데”라고 장밋빛 희망에 젖는다. 착한 게이들의 환호는 “우리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일 뿐”이라고 주장과 맥이 통한다. 이 땅의 착한 게이들과 정치적으로 올바른 여성들은 ‘좋은 친구’로서 게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공모자들이다.
평범한 게이 이미지에 불만을 품은 축도 있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차이를 강조하는 ‘못된 퀴어’파들이다. 퀴어파들은 “우리는 단지 ‘꼴리는’ 대상이 다른 것만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성애자와 차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이성애 질서를 해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일 뿐”이라는 호소를 뒤집으면 “다른 건 이성애자 여러분과 다를 바 없으니 우리를 정상적 시민으로 받아들여주세요”라는 구걸과 같다고 비판한다.
동성애자 안의 동성애 혐오증도 있다. 일부 게이들은 “왜 하필이면 홍석천이냐”는 속내를 드러낸다. 게이 대표선수가 좀더 멋지고, 남자다운 연예인이기를 바라는 욕심이다. 더 나아가 “제발 홍석천 나오지 마라”는 절규도 들린다. 이들은 홍승조의 커밍아웃 장면의 방영을 앞두고 “엄마, 아빠가 알까봐 무서워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읍소한다. 홍승조의 커밍아웃이 자신의 아우팅으로 이어질까봐 안절부절하는 부류다. 이들은 다른 게이들에게서 “홍석천 보고 짱내는 애들이 더 짱난다”는 면박을 받는다.
이런저런 불만과 왈가왈부에도 불구하고 홍승조의 등장은 게이 이미지가 징그러운 호모에서 다정다감한 게이로 바뀌고 있다는 좋은 징조다. 눈을 돌리면 “홍석천만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린다”는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가 넘쳐나는 탓이다. 그래서 좋은 편견을 만드는 일은 좋다. 좋은 사회는 좋은 편견이 많은 사회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