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정돈된 정원 앞에서 방심하지 말라. 풀숲 사이를 조금만 들춰보면 곰팡이가 슬어 악취를 풍기는 사람의 귀 한쪽이 굴러다니고, 로이 오비슨의 상냥한 올드 송이 살인의 전주곡이 될 수 있으니. “이상한 세상이야”라고 제프리가 샌디에게 속삭인다. 그러니까 <블루 벨벳>은 가장 기괴한 버전의 <오즈의 마법사>이다. 빨간 구두를 신은 (그리고 푸른 벨벳 가운을 걸친) 도로시가 끔찍한 사건에 휘말린다. 그녀의 남편과 아이를 납치한 악당 프랭크는 그것을 미끼로 그녀에게 사디스틱한 폭력과 섹스를 강요한다. 도로시는 점점 그에 굴복하며 길들여져간다. 프랭크에게 구타당할 때 그녀의 아름다운 입술은 웃는 듯, 황홀하게 벌려진다. 벌려진 입술 사이의 틈, 마치 버려진 귀 한쪽의 구멍처럼 우리를 소름끼치게 하는 낯선 공간. 그 틈으로 보이는 심연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다. “뭘 보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가까스로 “아무것도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
<블루 벨벳>이 그토록 불길하고 낯설고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우리의 촘촘한 무의식 어딘가의 정곡을 찔리는 기분이 들어서가 아니었을까. 안전하리라 믿었던 스위트 홈 안에서 큰 소리로 읽던 동화책이 실은 괴담이었음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폭로했기 때문이 아닐까. 잠들지 않는 아이의 눈에 모래를 끼얹고 그의 눈을 뽑아버린다는 잠귀신-샌드맨이 출몰하는 곳, 엄마를 구타하면서 당신과 섹스하고 싶다고 외쳐대는 사악한 오이디푸스들이 춤추는 곳, 그리고 아이의 병에 감염되어버린 ‘음란한’ 어머니가 벌거벗은 채 집 앞에서 서성거리는 곳이다. 모든 것이 안전하고 아름답고 평화롭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온 세상이 포스트 모던한 낙관주의로 넘쳐나던 80년대 중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무척 위험하고 모욕적인 영화로 간주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쁜 마녀 프랭크는 착한 마녀 제프리에게 외친다. “Let’s drive!!” 문자 그대로의 드라이브가 아닌, ‘충동’이자 혹은 ‘욕동’으로서의 드라이브를 말하는 것일까? ‘This is it’이라는 네온사인이 걸린 집으로 끌려간 제프리는 본능만이 난폭하게 날뛰는 무섭도록 퇴행적인 풍경을 목격한다. 꿈속에서 너와 함께 걸었네, 꿈속에서 너에게 말했네, 꿈속에서 넌 나의 것, 영원히… 립싱크로 로이 오비슨을 따라부르기. 린치의 영화에서 립싱크는 언제나 말해지지 않는 것, 혹은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을 대신 전달하는 수단이지 않았던가(<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신을 생각해보라). 욕망의 뫼비우스 띠를 따라 달리다보면 슈퍼 에고의 도움을 받아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착한 마녀는 간절하게 구원을 희구하지만, 악마의 속삭임 같은 불길이 치솟는 순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몽은 되풀이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칠흑 같은 세상에 구원을 가져올 것이라 예언되었던 개똥지빠귀가 창가로 찾아들지만, 그의 부리에는 꿈틀거리는 벌레가 물려 있었다. 도로시의 고향은 이미 사라졌다.
ps: 서플먼트로 준비된 ‘삭제장면’은 약간 맥이 풀린다. 원래 <블루 벨벳>을 4시간 분량으로 찍었던 린치는 영화사의 요구에 맞춰 2시간짜리로 편집했고, 그때 잘린 필름들은 영영 분실되었다고 한다. 남아 있는 스틸 사진들로 몇몇 시퀀스를 상상해서 복구해낸 ‘삭제장면’은 제프리의 과거장면, 제프리와 도로시 사이의 관계, 샌디와 그녀의 전 남자친구 마이크와의 관계 등을 좀더 선명하게 말해줄 수 있는 듯 보이지만, 그러나 결국 진정으로 말해지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립싱크처럼 어렴풋하게 전해지는 삭제장면의 원본들이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Blue Velvet-Special Edition 1986년 / 감독 데이비드 린치 출연 카일 맥라클란, 이사벨라 로셀리니, 데니스 호퍼, 로라 던 장르 스릴러 DVD 화면포맷 2.35:1 아나모픽 오디오 돌비디지털 5.1 출시사 이십세기 폭스(M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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