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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 없는 영화 만들려고,<위대한 유산>의 오상훈 감독
권은주 2003-10-22

가장 신경쓴 부분이 있다면. 나는 많이 울고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를 하고 싶다. 코미디도 코미디지만, 감정선을 매만지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악당들조차 조금씩 아픔을 갖고 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 관객이 애정을 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나쁜 사람 없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말이다.

본인의 백수생활 경험이 녹아든 것은 아닌지. 사실, 창식과 형인 창훈의 모습에 내 모습이 들어간 것 같다. 몸에 배어 있는 거라 그런지…. 시나리오를 쓸 때는 안 그런데 현장에 앉아 있으면 나의 백수 시절 기억이 은연중에 많이 들어가게 되더라.

완성작에 대한 느낌. 원하는 것은 다 얻은 것 같다. 큰 아쉬움은 없다. 처음 시작할 때의 느낌 정도는 보여주지 않았나, 하고 느낀다. 사실, 만들면서 감독, 연기자 취향의 영화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귀결점을 사랑으로 선택한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거기에 대해 제작사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 재밌는 장면부터 먼저 찍어야 했다.

배우와는 어땠는지. 임창정은 정말 똑똑하다. 아마 가장 짧은 시간 내에 학습을 할 수 있는 배우일 거다. “너 똥쌌어” 같은 대사도 첫 장면에서 김선아가 용변이 급해 오디션을 망친 이야기에서 착안해 임창정이 즉흥적으로 떠올린 아이디어다. 그리고 음악을 해서 그런지 대사를 칠 때도 리듬감과 기승전결이 있어 아주 좋다. 김선아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의 느낌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 사실, 나는 이 영화에서 리더나 독재자가 아니라 조율사 역할에만 충실하면 됐다. 배우, 촬영감독, 조명감독, 동시녹음기사 등이 자기 포지션을 충실해줬기 때문이다.

데뷔가 늦었다. 중앙대를 졸업하고 <뒤로 가는 시계> 같은 단편을 만든 뒤, <총잡이>와 <본투킬>의 조감독을 했다. <본투킬>을 끝낸 1996년부터 데뷔 준비를 했다. 그때 준비하던 게 <두 번째 가을>이란 멜로영화인데, 제작사가 작품을 엎었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 또 준비를 했는데, 제작사와 조율이 안 됐다. 멜로 바람이 빠질 때라 투자받기가 어려웠다. 또 이듬해에 다른 시나리오로 하다가 엎어지고, 그런 식이었다. 7년이 그렇게 지나간 거다. <위대한 유산>도 사실 내가 연출하는 게 아니었지만, 어찌하다 보니 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