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전야의 상류사회를 차가운 눈으로 그린 라클로의 고전적 치정극 <위험한 관계>의 조선판 리메이크 작품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스타일 있는 영화다. 화려한 색깔의 의상과 소품이 주는 시원한 매력 속에 충분히 관객의 시선이 빠질 만하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를 ‘디베르티멘토’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디베르티멘토란 ‘기분전환’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고전 음악 장르로서는 ‘희유곡’이라 번역되는 이탈리아어. 원작인 <위험한 관계>가 나올 당시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서 크게 유행하던 장르인 디베르티멘토는 말 그대로 귀족들의 즐길거리로서 귀족의 살롱에서 연주되곤 하던 기분 좋은 실내음악을 말한다. 하이든도 유명하지만 역시 디베르티멘토의 황제는 모차르트가 아닌가 싶다. 약간 경박한 가운데 촌철살인의 구조미를 갖춘 그 즐겁디 즐거운 멜로디들!
이재용 감독은 ‘바로크 음악을 듣다가 문득 서양 클래식 음악이 한국 사극의 배경으로 쓰이면 어떤 충돌이 생길지 궁금했다’고 O.S.T에서 밝히고 있는데, 바로 그러한 충돌을 가능케 해주는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디베르티멘토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디베르티멘토의 순수한 쾌락주의는 풍속사적 관점에서 조선시대라는 배경을 새롭게 보고자 한 이 영화의 시선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병우가 담당한 음악 파트가 특히 주목한 대목 역시 이런 관점이다. 사극이면서도 외국의 원작을 번안한 번안극이며 또 현대적인 스타일의 관점까지 버무려진 이러한 영화의 음악을 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병우는 제작진의 요구와 음악가의 예술적 욕망이 만나는 접합점을 신중하게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보인다.
이병우의 O.S.T는 단아한 느낌의 국악기들과 챔버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쾌적한 느낌의 스트링을 조화시키고 있다. 앨범을 여는 곡 <프롤로그-조씨추문록>은 조선시대라는 특정한 시공간을 떠나 앞서 말한 디베르티멘토적 관점을 취함으로써 보편성을 확보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이다. 친근한 느낌의 멜로디를 챔버 오케스트라의 스트링 선율로 끌고 가는 가다가 하프시코드 소리가 그 멜로디를 바리에이션해줌으로써 음악적 시대를 고전시대로 규정해낸다. 프롤로그가 지나가면 이내 가야금 선율이 등장한다. <남녀상열지사>라는 제목의 이 곡은 단아하면서도 약간은 긴장감어린 분위기를 제시하는데, 화성 자체는 우리 전통 화성을 따르기보다는 서양적인 것을 빌려오고 있어 첫 음악이 제시한 디베르티멘토적 상쾌함을 유지하고 있다. 세 번째 곡인 <타이틀>은 앞의 두 분위기를 한곡 안에 합치고 있는데, 아예 우리 북소리가 울려퍼지다가 실내악의 스트링 소리가 북소리를 이어받는 다.
이 정도 되면 관객의 귀는 조선시대라고 해서 너무 멀게 느끼지도 않을 뿐더러 또 서양악기들이 너무 시대착오적으로 영화를 덮는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정도로 중화된다. 이처럼 조심스럽게 하나의 시대를 음악적으로 편안하게 접근시킨 뒤에야 O.S.T의 다섯 번째 트랙 <춘면곡>이 등장한다. 본격적인 국악인 이 곡은 앞의 음악들이 주는 디베르티멘토적 성격 때문에 원곡의 느낌과 거의 상관없이 그 연장선상에서 관객에게 다가오고, 이러한 접근법으로 인해 국악과 양악의 독특한 조화가 가능해진다. 뭔가 시원스러운 맛은 상대적으로 좀 덜하지만 이병우의 신중함이 잘 발휘된 대목이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