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안 잡>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추격신에 관객들 소형차 ‘미니’ 열광
지난 여름 출장차 파리에 갈 기회가 있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지겹게 봐온 도시였지만, 막상 그 실체를 접한다는 생각을 하니 출국 전부터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흥분은 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진입하면서 더욱 고조되었고, 개선문을 중심으로 하는 샹젤리제 거리에 섰을 때 비로소 폭발했다. 라데팡스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샹젤리제 거리의 스케일에 압도당했다고 할까. 최고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그 어떤 복제라도, 원본이 가지는 아우라는 절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평소의 믿음이 그때 더욱 확실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짧은 출장이라 느긋하게 시내 뒷골목 구석구석까지 관광할 처지가 못 되었다는 사실. 파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에펠탑 정상에 올라보는 것으로 파리 유람이 끝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유독 내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파리 시내를 채우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들이었다. 물론 미국도 그 어느 도시에서나 전세계에서 몰려든 자동차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파리에서 내가 본 자동차들은 미국에서 흔히 보는 중대형급 자동차들보다는 훨씬 작고 독특한 모양을 가진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미니(MINI)라는 이름을 가진 소형차였다. 파리에서 1년간 산 경험이 있던 동료가 미니를 볼 때마다 ‘파리 사람들이 제일 사고 싶어하는 차 중 하나’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을 해 유심히 봤는데, 그때마다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던 것. 굳이 말하자면 우리나라 경차와 소형차의 중간쯤 되는, 그래서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그야말로 미니카인데, 그런 독특한 이미지가 소구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미니를 주인공으로 해 플레이스테이션2, 엑스박스, 게임 큐브용으로 출시된 <이탈리안 잡> 게임.
최근 개봉한 <이탈리안 잡>에 등장한 미니는 배우 이상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1969년작 <이탈리안 잡>에 등장한 미니.
그렇게 파리에서 미니를 처음 접한 뒤 몇달이 지난 얼마 전, <이탈리안 잡>을 보다가 샤를리즈 테론이 미니를 운전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조금 밋밋한 이야기를 미니가 훌륭히 해내면서 커버해내는 것을 보고는 괜히 즐거워했을 정도다. 하지만 얼마 뒤 미니가 <이탈리안 잡>에서 그런 활약을 보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69년에 만들어진 동명의 원작영화에서도 미니가 똑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케인이 주연을 맡았던 그 원작영화는 리메이크와 몇 가지 부분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는 것처럼 영화의 무대가 미국이 아닌 이탈리아라는 점. 하지만 대부분의 기본 설정들은 일치하는데, 중국에서 밀수되는 마피아의 금괴를 주인공이 빼돌린다는 점과 그 과정에서 도주용 자동차로 미니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3대의 미니가 등장하는 자동차 추적장면은 역사상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장면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사실 미니가 처음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은 그 영화가 만들어지기 10년 전인 1959년이었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처럼 서민도 큰 부담없이 살 수 있는 자동차라는 개념으로 프랑스에서 제작되었던 것. 하지만 1960년 F1 월드 챔피언을 두번이나 한 존 쿠퍼가 미니의 사업을 인수하면서부터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레이스광인 존 쿠퍼가 미니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미니 쿠퍼가 출시되면서 가정주부용 세컨드카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4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면서, 급기야는 세계적인 스타 자동차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비틀스가 미니 쿠퍼의 광적인 팬이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하지만 1969년 <이탈리안 잡>의 개봉을 끝으로, 70년대에 들어선 이후 미니의 인기는 끝없이 추락했다. 일부 유럽과 일본의 마니아들로부터의 수요에 의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던 것.
그러나 2001년, BMW가 미니를 인수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BMW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고 미니의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이전의 미니와는 차별화되는 성능의 제품을 내놓은 것. 그 결과 유럽시장에서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고, 올해 초 소형차가 인기를 끌기 힘든 미국시장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지난해 최고의 브랜드로 평가받았던 도요타의 렉서스를 밀어내고 당당히 브랜드 파워 1위로 선정될 정도로 돌풍을 이루어내고 있다. 참고로 미국시장 진출 이후 최고의 성과를 내면서 지난해보다 순위가 5계단이나 올라가 화제가 된 현대가 6위인 것을 보면, 미니 돌풍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미국에서의 성공을 <이탈리안 잡>이 더욱 가속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샤를리즈 테론이 미니를 타고 필라델피아 도로를 경주하듯 운전하다가 좁은 틈 사이에 멋지게 주차하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미니에 빠져들었다는 관객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리메이크된 <이탈리안 잡>을 ‘미니의 미국시장 내 선도적 위상 굳히기를 위한 1시간50분짜리 광고’라 부르는 이들이 나왔을 정도다. 나름대로 색깔있는 연기를 선보이려 했지만 어정쩡하게 되어버린 주연배우들보다는 미니가 훨씬 부각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이철민 /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이탈리안 잡> 공식 홈페이지 : http://www.italianjobmovie.com
<이탈리안 잡> 속 미니 홈페이지 : http://www.miniitalianjob.com
미니 공식 홈페이지 : http://www.mini.com
1969년작 <이탈리안 잡> 홈페이지 : http://www.codesign.it/codework/italian